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무와 협연한 영농 가수 루시드폴 "농사 지으며 다큐 찍듯 음악 만들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무와 협연한 영농 가수 루시드폴 "농사 지으며 다큐 찍듯 음악 만들죠"

입력
2021.01.05 04:30
21면
0 0
제주로 이주해 감귤 농사를 하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올해는 수확량도 많고 맛이 좋아서 놀랐다"며 "보통 비가 많이 오면 과일이 싱겁다고 하는데 가물었던 가을이 귤 맛을 더 좋게 한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안테나 제공

제주로 이주해 감귤 농사를 하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은 "올해는 수확량도 많고 맛이 좋아서 놀랐다"며 "보통 비가 많이 오면 과일이 싱겁다고 하는데 가물었던 가을이 귤 맛을 더 좋게 한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안테나 제공


나무와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란 어떤 걸까. 나무가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스치는 바람에 바스락거릴 뿐일 텐데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이 같은 상상을 현실화한 음악가가 있다. 스위스 로잔 공대에서 갓 쓰고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유명한 과수 농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46ㆍ본명 조윤석)이다.

인생 이력이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하고 농담 같기도 한 그는 지난해 8월 ‘모멘트 인 러브’라는 13분짜리 연주곡을 발표했다. 음표가 물방울이 되어 공간 위를 천천히 부유하는 것 같은 이 연주곡은 그가 가꾸는 제주 과수원의 진귤나무와 함께 만든 곡이다. 나무에 부착한 센서를 신시사이저에 연결해 전기 신호를 받아 음악으로 변환한 뒤 루시드폴의 연주를 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루시드폴 feat. 진귤나무’라고 써야 할까, 아님 반대로 써야 할까. 그는 이 곡처럼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연주곡 4곡을 모아 최근 앨범 ‘댄싱 위드 워터(Dancing with Water)’를 발표했다.

바쁜 감귤 수확 일정 속에서 서면 인터뷰에 응한 루시드폴은 “싱어송라이터로서 내 노래는 픽션보다 다큐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과수 농부로서 나무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다큐의 끝장판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서울에서 음악 활동을 하던 중 2014년 결혼 후 제주로 내려가 과수 농사를 시작한 그는 감귤 재배와 음악 활동을 겸하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루시드폴이 시골로 떠난 건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것,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좋아서”였다. 6년간의 농부 생활은 음악에도 영향을 줬다. 그는 “나무라는, 막연히 멀고 다르게만 느껴온 생물과 더 가까이 살며 사람도 동물도 아닌 어떤 존재를 돌본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 배웠다”고 했다. 비단 식물뿐이 아니다. 자연과 매일 마주하며 살다 보니 미생물과 벌레 같은 생명에도 관심이 더 많아졌단다.

자연이 만들어준 음악 소리는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됐다. '모멘트 인 러브'에 대해 그는 "진귤나무가 주변의 여러 자극에 매우 민감하게 상호 반응했는데 이틀에 걸친 연주 패턴이 서로 완전히 달랐고 기계에선 기대할 수 없는 패턴이 나와 흥미로웠다"고 했다. 자연에 이끌려 음악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말 정규 9집 ‘너와 나’에는 반려견이 작곡했다는 곡도 실었다.

앨범 제목과 같은 ‘댄싱 위드 워터 I’ ‘댄싱 위드 워터 II’는 지난해 봄 매일 물 속을 걷는 운동을 하며 만든 곡들이다. 물결의 파동, 물에 반사되는 빛의 반짝거림 등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반복’은 왜 똑같은 듯 똑같지 않고 늘 달라질까 생각한 것에서 출발했다. 그는 “변하지 않는 듯해도 어느새 큰 변화로 이끌리는, 거대하게 흐르는 그 무언가가 떠올랐던 것 같다”고 했다. 계절이나 조수, 아물어가는 상처, 나이 들어 가는 얼굴 같은 것 말이다.

‘댄싱 위드 워터’는 루시드폴이 자신을 치유하며 만든 앨범이다. 그래서 디지털 음원으로도 CD로도 출시하지 않았다. "셰프가 자신과 가족들만 먹을 음식을 조금 더 만들어서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 조금만 나누는 정도"로만 LP 300장을 한정 발매했다. 그는 “예전에 홈페이지에 ‘이런 맹물 같은 음악을 누가 들어줄까?’라고 쓴 적이 있는데 어차피 이 앨범은 내가 나를 위해 만든 음악, 내가 듣기 위해 만든 음악이니 아주 소량의 LP 정도만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루시드폴의 삶은 농사와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다음 앨범도 자연과 함께하는 앰비언트가 될까. 그는 “정규 앨범이 새해에 나올 타이밍이긴 한데 당장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사라 잘 모르겠다”며 대답을 유보했다.

고경석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