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쏘아 올린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에 청와대는 일단 선을 그었다. '아직 문재인 대통령이 나설 때가 아니다'는 것이 내부 기류다. 뒤집어 보면 '때가 되면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사면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못박지 않은 것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일 수 있다.
이 대표가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론이 무르익으면 문 대통령이 결단하는 식으로 당청이 역할 분담을 했을 공산이 크다.
"건의 오면" "형 확정되면"... 전제조건 단 靑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문 대통령에 건의하겠다'는 이 대표의 1일 발언에 청와대는 내내 거리를 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일 "아직 건의가 오지 않았다. 청와대가 나설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특별사면은 '형을 선고받은 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 전 대통령의 형은 확정됐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선고는 이달 14일이다.
이 같은 반응은 '여당의 공식 건의와 형 확정이라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면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필수 조건은 '여론 찬성'과 '당사자 반성'
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여론의 사면 찬성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면의 필수 조건은 국민적 동의"라고 말했고, 여권 관계자는 "삼일절, 광복절 등 시기를 못박는 것이 오히려 정부ㆍ여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급하게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태도' 역시 중요한 요건이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여당 지지층의 반감을 누그러뜨러야 문 대통령이 결단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최고위원회도 3일 "당사자 반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청 모두 "사면론 관련한 사전 조율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을 노련한 이낙연 대표가 불쑥 띄웠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대표는 최근 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통합'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고 공개한 바 있다. 이어 이 대표는 "사면 제안은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오랜 충정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이 사면의 '총대'를 이 대표에게 넘기고 당청이 발 맞춰 움직이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文 원칙 깨는 것" 회의론도
지치층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 민주당이 3일 '신중한 추진'으로 방향을 틀면서 문 대통령의 '의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달 중순쯤에 열릴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이 정돈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 대통령이 사면을 결단한다면, 원칙을 스스로 깨게 되는 것은 부담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뇌물ㆍ알선수재ㆍ알선수뢰ㆍ배임ㆍ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 권한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 사면권 제한은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마련한 헌법 개정안에도 담겨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횡령ㆍ뇌물 등 혐의로 지난 10월 징역 17년형과 벌금 130억원을 확정받았고, 박 전 대통령도 뇌물 등 혐의를 받고 있다.
'사면의 국민 통합 효과'와 '사면을 제한한다는 약속' 사이에서 문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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