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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낙태죄 개선 입법 피하지 말라

입력
2020.12.23 06: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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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앞둔 지난해 4월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찬성측과 반대측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앞둔 지난해 4월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폐지 찬성측과 반대측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금년 말까지 개선 입법을 만들도록 시한을 명시했지만 연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개선 입법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년 말까지 낙태죄 개선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아무런 대안 없이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는 헌법재판소 다수 의견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명시한 바와 같이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태아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생명권 침해에 대한 금지청구나 배상청구 등 법적인 수단을 강구하지 못하므로 국가가 이러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는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국회가 낙태죄 개선 입법을 마련할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경우 이는 ‘입법 부작위’로 인한 위헌적 상태가 야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헌적 입법 부작위’ 상태가 야기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집권당에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한 민주당 관계자는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계·의료계·법조계·종교계 등의 의견이 너무나 다르다 보니 직접 폐지하기보다는 폐지되는 방식을 택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는데 민주당의 입장이 그러하다면 이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국가적 의무를 외면하는 것에 해당한다.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개선 입법의 방향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였으므로 국회는 이러한 지침에 따라 신속한 개선 입법을 이뤄 내야 한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다수 의견은 물론 단순 위헌의 소수 의견도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을 임신 22주 내외로 규정함으로써 이 시점부터는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우선하여야 함을 확인했고, 임신 22주 이전의 시점으로서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착상 시부터 이 시기까지를 ‘결정 가능기간’이라 한다)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헌법재판소 결정은 결정 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 가능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결정 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 포함하여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 요건이나 숙려 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등은 국회의 재량에 속한다고 판시하였으므로 국회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판시 내용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러한 사항들을 개선 입법에 담으면 되는 것이다.

낙태죄 개선 입법은 첨예한 가치관의 충돌이 야기되는 입법이고 따라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비난을 받을 소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하고 제일 필요한 일은 욕을 먹더라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인 경우가 많다. 낙태죄 개선 입법에 대한 국회와 집권당의 관심과 행동을 기대한다.



김주영 변호사ㆍ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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