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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동물보호법을 가진 나라의 시민이다

입력
2020.12.22 17:00
수정
2020.12.22 17:3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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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
최성용작가
미래수산TV 캡처

미래수산TV 캡처


수입 활어 검역 강화를 주장하며 살아 있는 방어와 참돔을 길바닥에 던져 죽인 시위가 있었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학대로 시위 주최 측을 고발했다. 이들의 고발이 기사화되자 극단적인 자연주의자라는 조롱의 댓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있는 어류를 땅바닥에 내던지는 행위를 비롯한 동물학대를 불법으로 규정한 동물보호법을 갖고 있다.

동물보호법은 1991년에 제정됐다. 그러니 그 이전에는 방어를 집어 던지든, 개를 몽둥이로 때려잡든, 반려견을 굶기든, 길고양이에게 독극물을 먹이든 불법이 아니었다. 법은 동시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인식을 반영한다. 같은 행위여도 시대에 따라 합법과 불법을 오간다. 우리 사회는 1991년에 이르러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법률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동물보호법은 ‘동물도 존재로서의 존엄성이 있음’을 전제한다. 사실 동물을 잡아먹고, 동물의 부속물을 이용해 온 인간이 동물의 존엄성을 생각하고, 그것을 인간의 법률에 명시한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 인권 개념이 생기고, 인권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국가)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한 게 불과 300여년 전의 일이니 말이다.

동물보호법은 ‘인간에 의해 동물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하고 잔인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출발했다. 따라서 동물보호법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고통’이다. 동물보호를 다룬 기사마다 ‘넌 고기 먹지 마라’ 유의 댓글이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불가피하게 동물을 죽이더라도 고통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동물을 이유 없이 때리거나, 건강을 상하게 하는 환경에서 키우거나, 동물의 본성에 맞지 않게 키우는 것 모두 ‘고통’의 범주에 들어간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동물보호법에서 보호하는 동물은 어떤 동물일까? 법의 취지에 비춰보면 ‘고통을 느끼는 모든 동물’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 과학적으로 고통을 느낀다고 밝혀진 동물은 척추동물이다. 따라서 동물보호법의 대상은 ‘척추동물’이다.(단 어류는 식용 제외) 스위스에서는 랍스터를 끓는 물에 넣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이는 갑각류의 신경계가 정교하고 예민하여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을 경우 끔찍한 고통을 느낄 것이라는 과학계의 주장을 그 사회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법이 되려면 과학적 사실에 더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소, 말, 돼지, 개, 고양이, 토끼, 닭, 오리, 산양, 면양, 사슴, 여우, 밍크’만을 대상으로 했다가 2018년에 이르러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서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가 보호대상임이 명시됐다.

수차례 개정을 통해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고통 줄이기’를 넘어섰다. 개를 산책시킬 때 목줄을 채우고 배설물을 즉시 치워야 한다는 조항이(2007년), 입마개 착용 의무화를 포함한 맹견의 관리에 대한 조항이(2019년) 신설됐다. 동물보호법이 ‘동물이(정확히는 동물 주인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까지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을 넘어, 동물복지를 위한 국가의 의무도 명시됐다. 국가는 5년마다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동물복지 계획이 잘 집행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동물보호센터를 설치, 운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물의 고통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동물보호법은 동물(주인)이 지켜야 할 의무와 규칙,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국가의 의무까지 담아내는 쪽으로 확장되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 ‘공존’이다. 기존 법률에는 동물을 보호해 ‘생명의 존중 등 국민의 정서 함양에 이바지함’이 동물보호법의 목적임을 밝히고 있다. 2018년 한 줄이 추가됐다.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이미 동물과의 공존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을 가진 국가의 시민이다. 그러니 방어를 내던지는 것에 분노했다고 해서 극단적인 자연주의자로 몰지는 말길 바란다. 동물과 더불어 사는 것이 상식이 되고 있다.

최성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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