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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이 주신 몸에 칼을?"… '성형=금기' 깨지다

입력
2020.12.24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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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의료웰니스관광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지난해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국 의료웰니스관광박람회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지난해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국 의료웰니스관광박람회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팔로워 수가 2,570만명인 인도네시아 유명 연예인 제시카 이스칸다르(32)씨의 인스타그램이 올 1월 찬반 논쟁으로 뜨거웠다. 대략 간추리면 이렇다.

제시카: "엄마 성형 수술해주러 한국에 가요."

반대: "신이 주신 얼굴을 고치는 건 신을 모독하는 짓이다." "왜 가짜 얼굴을 만드나."

찬성: "엄마에게 젊음을 선물하는 효도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건 자유다."

논쟁의 추는 찬성으로 기울었다. 10년 전만 해도 비난 일색이던 분위기가 시나브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엄마의 수술을 마친 제시카씨는 "더 아름답고 건강한 엄마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동영상을 남겼다. 이후 팔로워 수가 100만명 가까이 늘었다.

제시카 이스칸다르 모녀. 인스타그램 캡처

제시카 이스칸다르 모녀. 인스타그램 캡처

종교 색채가 짙은 인도네시아는 '성형=금기'라는 심리적 공식이 통용됐다. 2억7,000만 인구의 87%를 차지하는 무슬림뿐 아니라 기독교인들(6%)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성형을 죄악시하는 교리는 없지만 '신이 선물한 몸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다. '성형'이란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사회상 탓에 성형의 역사는 부정됐고, 성형 기술 발달은 더뎠다. 태국 등 이웃나라에서 이뤄진 성형도 쉬쉬했다.

성형이 공론의 장에 오른 건 2006년이다. 성매매, 가정폭력 등 기구한 삶을 살던 당시 스물두 살 리사씨는 남편의 염산 테러로 코를 비롯해 얼굴 절반이 녹아 내렸다. 그는 18시간이 걸린 첫 수술을 비롯해 17번의 성형 수술을 적어도 42명의 의사로부터 받았다. 이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안면이식 수술이자 첫 얼굴 성형 수술로 기록됐다. ‘성형=금기’에 처음으로 작은 틈을 낸 리사씨는 현재 성공한 보석 사업가다.

남편의 염산 테러로 수술한 리사씨. 리푸탄6닷컴 캡처

남편의 염산 테러로 수술한 리사씨. 리푸탄6닷컴 캡처

2009년 인기가수 크리스다얀티(45)씨는 자신의 미용성형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원래 몸이 신이 준 선물이라면 성형은 자신이 준 선물" "공인이라면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거울 앞에서 행복하다" 등 그는 당당하게 성형을 예찬했다. "가짜" "성형 중독" "오플라스(성형 미인을 뜻함)" 같은 거센 비난에 시달렸지만 크리스다얀티씨는 성형 전도사를 자처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등장과 인기는 '제2, 제3의 크리스다얀티'를 부추겼다. 당둣(인도네시아식 트로트) 가수 니타 탈리아(38)씨 등 연예인과 인플루언서(SNS 유명인)를 중심으로 성형 고백과 병원, 가격, 절차 등 성형 정보 공유가 잇따랐다. 반대가 주류였던 여론은 차츰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타인의 선택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성형 사실을 공개한 인도네시아 가수 크리스다얀티씨의 수술 전후. 힙위 캡처

성형 사실을 공개한 인도네시아 가수 크리스다얀티씨의 수술 전후. 힙위 캡처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현지인들의 인식도 '이해와 존중'에 가까웠다. 무슬림 여성 나즈마(24)씨와 루시(25)씨는 각각 "성형은 죄악이라고 생각해 저는 안 하겠지만 주변에서 누군가가 수술을 원한다면 반대하지 않을 것", "예전엔 성형을 반대했으나 신의 선물(몸)을 사랑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성형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무슬림 남성 리즈키(26)씨는 "극단적인 중독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입장이다. 비(非)무슬림 여성 디크(25)씨는 "사회의 수용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이라며 "다만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의 압력이 아니라 아름다워지려는 개인의 소망이 성형의 이유가 되는 미래를 바란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지난해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국 의료웰니스관광박람회'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지난해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국 의료웰니스관광박람회'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달라진 분위기는 한류로 주춧돌을 놓은 '성형 강국' 한국에겐 기회다. 지난해 한국에 의료관광을 다녀간 인도네시아인은 5,716명(이 중 30%가 성형ㆍ미용 추정)으로 전년대비 74.8% 증가했다. 이는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다. 흐름에 부응하듯 한국관광공사는 2018, 2019년엔 현지에서, 올해는 온라인으로 '한국 의료웰니스관광 박람회'를 개최했다. 한국 입국부터 귀국까지 모든 과정을 맞춤형으로 일괄 서비스(컨시어지)하는 의료관광대행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한국에서 성형을 하겠다는 대기 인원도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여성이 한국의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유노고 제공

인도네시아 여성이 한국의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유노고 제공

치과의사이자 의료관광대행업체 유노고의 공동 창립자인 황유진 대표는 "7월부터 최근까지 상담을 한 144명의 절반 이상이 언제쯤 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물을 정도로 한국에서 성형하길 원하는 중상층 무슬림 여성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국 등에서 수술한 부작용 때문에 고통 받다가 한국에서 재수술로 흉터 등이 사라지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거나 선물을 보내주는 고객도 꽤 있다"고 말했다.

황유진 유노고 대표. 유노고 제공

황유진 유노고 대표. 유노고 제공

변정섭 관광공사 자카르타 지사장 직무대행은 "자국의 열악한 의료시설과 부족한 의료인력 때문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 이웃나라를 찾던 인도네시아인들이 이제 일상이 된 한류와 SNS를 통한 정보 공유로 한국의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누리고 싶어한다"고 풀이했다. 의료 사고,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계약과 다른 사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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