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이후 45년간 자리 지킨 '국회의사당 준공기'
15년 전 이낙연, "유신 의식 담겨" 철거 논란
국회, 환경개선 명목 전광판으로 '역사 가리기'
국회 의사당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이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가려졌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민원실 현관 대리석 벽면엔 1975년 8월 15일부로 작성된 '국회의사당 준공기'가 새겨져 있었다. 정일권 당시 국회의장 명의로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설의 의미를 담은 이 준공기는 가로 약 10m 길이의 대리석 설치물로, 지난 45년간 한자리를 지켜 왔다. 그런데, 최근 그 앞에 대형 LED 전광판이 설치되면서 자연스럽게 가려졌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국회의사당 준공기는 45년 전 처음 새길 당시엔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문구에서 야당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아 국회의사당 준공식에 불참할 만큼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국회를 오가는 이들이 별 의미 없이 스쳐지나는, 그저 그런 기념물 정도로 전락했다.
국회의사당 정문 현관도 아닌 후문에 설치돼 있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준공기가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15년 전 이낙연 당시 민주당 의원에 의해서다. 2005년 9월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이 국회의사당 준공기를 거론하며 ‘국회 차원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이 의원은 준공기의 문구 중 ‘장엄한 의사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에 대한 포부와 민주전당으로서의 웅대한 규모를 갖추려는 영단에 의하여 우리들의 지식과 성력과 자원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이룩해 놓은 것이다’라는 문장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 문구가 대통령의 시혜로 국회가 건립됐음을 강조하고, 삼권 위에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유신 의식’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후 준공기를 두고 '박정희 현판'이라는 논란이 이어졌고, 정치권에서 전체 또는 부분적인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2~3년 후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논쟁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후 10여년 만에 다시 진보 성향의 문재인정부가 들어섰고, 준공기에 대한 논란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양한 여론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국회는 완전한 ‘철거' 대신 '가리기’라는 절충안을 택했다. 준공기를 없애지 않고 그 앞에 대형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같은 합의에 의해 최근 준공기가 부착된 국회 민원실 현관 벽면에 가로 12m, 세로 3m, 두께 70㎝ 크기의 대형 스크린이 등장했다. 이르면 다음 주부터 국내 자연경관을 담은 영상 또는 국회 이미지를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외빈 및 방문객 환영 메시지, 각종 행사 안내 등이 상영될 예정이다. 국회사무처는 '박정희 지우기' 논란을 의식한 듯 해당 전광판에 대해 '공간개선' 사업이라는 명목을 내세웠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기나긴 논쟁의 결과로 그의 흔적에 대한 '지우기'인지 '가리기'인지, 아니면 단순한 '환경개선' 사업인지 모호한 대형 설치물이 세워졌고, 여기에 국민 혈세 3억5,000만원이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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