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장기화로 신성장 동력 발굴 절실
핵심 역량 활용해 방향 전환하는 '피보팅'
카페, 호텔 등 대면 의존하던 업계서 확산
#. 필름 제조사 코닥과 후지는 1970년대 후반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에 전혀 다른 대응을 했다. 코닥은 필름을 넣어야 하는 디지털카메라라는 모순적인 상품까지 개발하며 필름 사업에 집착했고, 후지는 필름 사업을 과감하게 줄였다. 대신 후지는 필름 사업으로 터득한 화학물질 데이터와 가공기술로 의료기기, 의약품, 화장품 사업까지 진출했다.
2012년 파산보호 신청까지 갔던 코닥은 인쇄기, 특수필름 등으로 연명하다 올해 들어서야 바이오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추진 중이다. 반면 후지는 빠른 태세 전환으로 신성장 동력을 창출한 일명 '피보팅(Pivoting)'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최근 산업 현장에서 피보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원래 피보팅은 공을 든 채 한쪽 다리를 여러 방향으로 옮기면서 다음 플레이를 준비하는 것을 가리키는 농구 용어지만, 요즘은 기업이 기존 사업 모델이나 목표를 고칠 때를 말하는 경제 용어로도 쓰인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존 사업모델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특히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영업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려는 유통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호텔, 카페 등 유통업 기업이 기존의 판매 대상과 방식을 바꾸는 추세다. 정체성을 흐리는 문어발식 사업 확장보다는 핵심역량을 활용한 신규 서비스로 주력 사업모델과의 시너지를 실험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대표적인 곳이 스타벅스다. 그간 스타벅스는 급성장하는 국내 배달시장에 유독 조심스런 태도를 보여왔다. 전 세계 매장에서 균일한 풍미와 향을 제공한다는 가치를 내세우는 스타벅스는 배달 매출보다 배달 과정에 커피가 식거나 얼음이 녹는 문제를 더 크게 봤다. 공간으로서의 매장 가치를 중시하며 진동벨 없이 호명해 커피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대면 서비스 강화의 일환이다.
그런 스타벅스가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에 배달 특화 매장을 열었다. 고객이 앉을 공간은 없고 배달기사 대기 공간만 있다. 균일한 품질을 위해 스타벅스는 배달 시간 소요에도 맛 변화가 거의 없는 음료와 음식을 선정했다. 생크림이 올라가는 음료는 배달에서 제외하는 식이다. 지난달 25일부터는 신세계 통합온라인몰 SSG닷컴에서 새벽배송도 시작했다.
9월 기준 스타벅스 매장 수는 1,473개로 지난해 말(1,378개)보다 늘었지만 3분기 영업이익은 413억원으로 작년 3분기 428억원보다 소폭 줄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이례적인 점포당 실적 감소를 겪자 스타벅스도 변화에 나선 셈이다.
신라호텔은 숙박업 불황이 길어지자 호텔 주변 자연경관을 활용한 요가와 다도 수업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숙박 외 상품을 지속 개발하기로 했다.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은 지난달 전자상거래에 진출했다. 마케팅과 콘텐츠 제작 능력으로 패션, 뷰티 등 다양한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는 콘텐츠를 채우고 상품을 대여해 주는 렌털 특화 '겟트'를 운영 중이다. 광고업계 역시 코로나19로 기업이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신사업 발굴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분간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는 피보팅과 신사업 검증은 지속될 전망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미국, 중국 등에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일반 매장이 배달을 같이하는 형태고, 배달만을 위한 매장을 연 건 한국이 처음"이라며 "테스트 기간을 충분히 겪으면서 성장성을 검증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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