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형'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
다음달 4일부터 예술의 전당서 전시
언뜻 보면 공책에 끄적인 낙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격을 알면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 가격은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호가한다. 지난해 세계 3대 경매회사인 필립스 경매에서 17만5,000파운드(약 2억5,00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영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꼽히는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86)다.
와일리는 다음달 4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를 앞두고 17일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많은 작가들이 직설적인 표현을 추구하는데 이를 잘 표현해내는 건 어린 아이들의 그림"이라며 "(천진난만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은) 미술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 작품을 말할 때 '만화 또는 어린아이 같다'는 평보다는 고대미술, 고대벽화, 원시예술, 전기 르네상스 등과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대기만성형. 와일리를 소개하기에 딱이다. 스물 하나에 결혼해 20여년을 가정주부로 살다 47세 때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 영국 일간 가디언이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할 때까지 수십 년을 이름 없는 화가로 살았다. 이후 테이트 미술관, 런던 서펀타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대중적인 사랑을 얻더니 2018년에는 영국 왕실 문화계 공로상을 받았다.
무명 시절, 와일리는 매일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황은 강박적일 정도의 꾸준함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명해진 이후 달라진 점이 있냐는 질문에 "인정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 만큼 작가로서의 책임감이 주는 자극이 있다"고 답했다.
와일리는 이집트 고대 문명부터 영국의 축구 선수 존 테리와 토트넘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등 친숙한 소재를 활용해 작품에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꽃집에서 사는 꽃보다 기차길 옆 잡초, 망치 등 일상의 사소한 존재의 미학적 가치를 강조하고 싶다"며 "가식 없이 진실을 담은 작품에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와일리는 종종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프랑스의 색채화가 앙리 마티스를 언급한다. 그는 "마티스는 분석적이기보다 종합적인 작업을 추구하는 작가였고, 나 역시 그렇다"며 "사물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최대한 표현하되, 이후 작품을 봤을 때 짜증나거나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으면 완성됐다고 본다"고 했다.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마르지 않은 그림을 옮겨 줄 어시스트가 올 수 없는 상황이라 좀 더 작은 규모로 작업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인터넷 검색을 하는 시간이 늘면서 처음 접하는 것들을 그린 '드로잉'이 많아졌다"며 "원래도 친환경을 중시했는데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그에 대한 생각이) 오히려 더 강화됐다"고 덧붙였다.
와일리는 앞으로의 도전 과제도 "(예전 목표와) 변함없다"며 "덴마크 루이지에나 미술관, 독일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 미국 뉴욕 모마(MoMa),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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