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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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입력
2020.11.09 18:00
수정
2020.11.0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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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트럼프 축출은 미국 시민의 위대한 승리
낙후된 선거제로 불복 소송 잇따를 것
양극화 해소 없인 민주주의 회복 어려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당선자 간 다툼이 양측 지지자들의 충돌로 번지고 있다. 지난 5일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의 개표장소인 TCF센터 앞에서 트럼프 지지자(왼쪽)와 반 트럼프 시위자가 서로 삿대질을 하며 언쟁을 벌이고 있다. 디트로이트=AP 연합뉴스

제46대 미국 대선의 가장 큰 의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축출’이다. 트럼프 집권 4년은 전 세계 민주주의를 한 단계 낮춘 시기로 역사에 기록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 소식에 지구촌은 더는 세계 질서와 규범이 헝클어지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이 넘친다. 트럼프 없는 세상은 국제 사회의 안정과 평화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미국 내부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쇠락을 멈출 수 있다는 바람이 물결친다. 극단으로 분열된 미국의 모습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지만 상황은 훨씬 심각해졌다. 미국인 상당수가 “미국이 너무 많이 변해서 내 나라에 있으면서도 이방인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트럼프를 낙선시킨 것만으로도 미국 시민의 결정은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런 기여에도 불구하고 선거 과정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맨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어느 때보다 극심한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 모범국으로서의 위상을 여지없이 파괴했다.

승자 독식 형태의 낙후한 미국 선거 제도의 결함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18세기 교통ㆍ통신 수단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선거 관리가 쉽지 않던 시기의 산물인 간접선거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남아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소수 경합주가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현상도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 이번에도 전체 51개주 가운데 관심을 끈 지역은 ‘러스트벨트’ ‘선벨트’로 불리는 일부 주였다. 다른 주들은 영락없는 들러리 신세였다.

불합리한 제도에서 선거 불복은 예견된 일이다. 한 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선거인단을 독차지하는 상황에서 선거 절차에 대한 의문 제기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2000년 앨 고어의 소송에 이은 트럼프의 무더기 소송은 앞으론 진영 대립이 치열할 때마다 반복될 예고편에 불과하다. 박빙의 승부였던 터라 트럼프에게서 승복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이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에 승리한 뒤에도 “수백만 명에 이르는 불법투표가 있었다”고 했던 게 트럼프다.

최악의 분열상은 이미 선거 과정에서도 표출됐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갈등이 선거의 중심에 섰고, 크고 작은 폭력 사태가 빚어졌다. 선거 개표 날 시위대를 우려해 대통령 집무공간에 철조망을 치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 진영 대립은 가족과 친구끼리도 갈라놓은 지경이 됐다. 양당은 정책적 차이뿐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 차이를 포함하는 뿌리 깊은 원한으로 갈라서 있다.

국제분쟁 전문가인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미국 사회가 집단 본능인 부족적 정체성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백인이 차별당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백인 민족주의의 부상이 보수 포퓰리즘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한다. 미국 사회의 당파적 적대감은 경제적 불평등이 더해지면서 깊어져 왔다. 기득권층과 엘리트들이 빈부 격차와 약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했을 때 사회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미국은 실증하고 있다. 트럼프를 몰아내는 것만으로 미국 사회가 건강한 민주주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기다.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트럼프 이후 미국은 더욱 뚜렷한 양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제도적 전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리더십을 복원하고 내부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것은 바이든의 몫이다. 그것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미국 민주주의 가드레일을 튼튼히 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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