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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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예요. 네가 은퇴식을 하니 이제 나도 은퇴해야겠다.”
국내 프로축구 최고령 공격수 ‘라이언 킹’ 이동국(41) 선수가 얼마 전 은퇴 기자회견에서 아버지 얘기를 꺼내다 눈물을 터뜨렸다. 프로 생활 23년을 포함해 30년 축구 인생 내내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버지의 말씀에 가슴이 찡했다는 그의 말은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그가 여전히 상대를 위협하는 실력을 갖췄다고 보고 있다. 본인도 “많은 분들이 1년은 충분히 뛸 수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고 하시더라”며 “경쟁력이 있는 상태에서 은퇴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종목을 떠나 모든 프로 선수들은 단 한 경기라도 더 뛰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고 싶고, 남은 일생 동안 써야 할 돈도 더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팀들은 제한된 예산으로 이겨야만 하기 때문에 선수들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다.
이동국 선수의 은퇴를 보고 팬들은 “멋진 퇴장”이라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내려오겠다는 그의 결정을 응원하면서 선수가 아닌 제2의 인생이 잘되길 비는 마음을 담았다.
또 한 사람. 곧 물러나야 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박수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채 자신이 위대하다고 치켜세운 미국에 너무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선거 날인 3일(현지시간) 이후 그는 뚜렷한 근거 없이 불법 투표가 있었고 개표가 조작됐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을 찍은 7,000여만명을 포함한 유권자의 선택을 무시해 버렸고,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미국 대선에서 120년 넘게 이어져 오던 패자의 승복 문화도 멈춰 버렸다. 이 전통은 패배한 후보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 ‘아쉽지만 이제 승자에게 박수를 보냅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면 승자는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계기로 삼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경쟁자였던 조 바이든 당선자에게 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라를 둘로 완전히 갈라치기하고 있다. 그는 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내 유권자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싸우라고 부추긴 셈이다.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트럼프와 바이든 지지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도둑질을 멈춰라’(#stophthesteal)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바이든해리스2020’(#bidenharris2020)이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여론전도 계속되고 있다.
이동국 선수는 은퇴 결심의 결정적 계기를 묻자 “부상을 입은 뒤 조급했다"며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도 욕심을 내고 불안함을 많이 느꼈고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은퇴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야말로 욕심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미국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남긴 결과물이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라도 얻을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미국인들은 박수 대신 야유를 보낼 것이고, 세계 누리꾼들은 트럼프 자신이 유행어로 만든 ‘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를 더 많이 퍼 나르며 조롱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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