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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과 보편 인권

입력
2020.11.09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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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SNS캡처

유승준 SNS캡처


3주 전 이곳에 ‘이제 유승준을 용서할 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유승준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너무 길며, 비자 발급 거부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자고 했다. 예상대로 비판적 반응이 대다수였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유승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국감장에서 유승준 문제가 여러 차례 거론됐다. 병무청장은 "유승준은 2002년도에 병역 의무를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병역 의무를 면탈했다"며 입국은 계속 금지돼야 한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역시 비자 발급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외교부가 제대로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라며 "(유승준을) 입국시키라는 게 아니라 절차적 요건을 갖추라고 판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무청장과 외교부 장관의 답변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애써 모른 체하거나, 곡해한 것이다. 대법원은 외국인 범죄자의 경우 강제 출국된 이후 5년이 지나면 한국 입국이 가능하며, 병역 기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도 만 38세까지만 한국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승준의 행위에 비해 처벌이 과도해 ‘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남을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최종 심급인 대법원의 판결을 우리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에서 병역 의무가 아무리 신성한 가치라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적 인권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인권의 어떤 예외를 인정하면, 언젠가는 우리가 그 예외의 표적이 된다. 유승준이 밉다고, 우리 사회가 그를 영구 배제하겠다는 것은 지나치다.

그리고 나는 대법원의 판결을 대하는 정부의 이중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강제 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대법원의 판결은 정부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정작 국가 간 이해 조정을 위해 통치 행위가 필요할 때는 사법부 뒤에 숨고, 이처럼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할 사안에 대해선 외면하고 있다.

유승준의 F-4 비자 신청에 대해서도 여전히 말들이 많다. 관광 목적이면 무비자로 들어올 수 있는데, 상업적 활동을 할 수 있는 F-4비자를 굳이 고집하는 게 더 밉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비난은 가짜 뉴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승준은 지난 2002년 법무부 장관의 입국 금지 결정에 따라, 어떤 목적이든지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 2003년 장인상 때도 법무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 들어올 수 있었다. 유승준이 입국을 위해 정식으로 법적 다툼을 할 수 있는 비자가 F-4다.

유엔의 세계 인권 선언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차별 없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국감장에서 “유승준 입국 금지가 인권 침해가 되는지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인권위의 판단을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유승준에게도 한마디 해야겠다. 유승준은 기만에 가까운 자신의 거짓말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 여전히 잘 모르는 것 같다. 잘못의 크기를 알아야 용서를 비는 태도가 정해질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불법이 아니었다는 강변만 앞세우는 걸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느낀 바다. 때론 불법보다 거짓말이 끼치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크다. 그가 열어야 할 건 입국장의 문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이다.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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