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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과 결별한 이택근, 동료들이 '은퇴식' 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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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키움과 결별한 이택근, 동료들이 '은퇴식' 열어줬다

입력
2020.10.3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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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키움 선수들이 마련한 은퇴식을 치른 이택근(가운데)이 박병호(오른쪽), 김상수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키움 선수단 제공

29일 키움 선수들이 마련한 은퇴식을 치른 이택근(가운데)이 박병호(오른쪽), 김상수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키움 선수단 제공


키움과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이택근(40)이 깜짝 은퇴식을 치르며 18년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식을 마련한 건 키움 구단이 아닌 동료, 후배들이었다.

키움 선수단은 경기가 없던 29일 서울 모처에 모여 베테랑 이택근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최고참 투수 오주원과 주장 김상수, 야수 최고참 박병호부터 김하성 이정후 등 주축 선수는 물론 외국인 선수까지 1군 전 선수단이 집결했다. KBO리그에서 유례가 없는 선수단 주최 은퇴식이었다.

비록 장소는 야구장이 아니었지만 구단에서 준비하는 은퇴식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구성으로 팬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이택근의 현역 시절 활약상을 담은 영상으로 시작한 행사는 선수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제작한 타 구단 동료들의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이택근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절친한 선후배 박용택과 정근우(이상 LG), 이범호(은퇴)가 이택근의 앞날을 축복했다.

이택근의 야구 인생은 2018년 팀 후배 문우람의 폭행 사건 폭로로 기로에 섰다. 정작 문우람은 이택근이 누구보다 아낀 후배였다는 것이 키움 선수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택근은 거센 비난 여론에 몰려 해명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폭행범'으로 낙인 찍혔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불려나가 고개를 숙였고, 36경기 출전 정지를 받았다. 동료들이 탄원서까지 제출했지만 이택근은 법의 한계에 부딪혀 항소를 포기하고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은퇴식에 참석한 한 선수는 "과연 오점을 남긴 선배라면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은퇴식을 준비했겠느냐"고 반문했다.

키움 선수단이 이택근에게 전달한 은퇴 기념패. 키움 선수단 제공

키움 선수단이 이택근에게 전달한 은퇴 기념패. 키움 선수단 제공


김상수는 영상을 통해 "형님이 주장하실 때 노력하고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면서 "형님이 노력하신 부분들이 저희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다. 저에게는 최고의 주장, 최고의 야구선수, 최고의 선배님이다"라고 진심을 전했다. 오주원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시는 모습도 봤고 야구장 밖에서도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항상 챙겨주셨다. 선수로서도 멋있지만 인간으로서 본받을 게 많고 존경스럽다"고 경의를 표했다.

1년 공백을 딛고 올 시즌 개막 초반 큰 힘을 보탠 이택근은 6월 1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가 현역 생활에 미련을 버린 지는 오래 됐다. 이정후가 입단해 주전 자리를 꿰찼을 때부터 "실력에서 밀린 것이니 이제 내가 할 일은 열심히 후배들 도와주고 응원하는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어 넘겼던 이택근이었다. 다만 명예회복을 위해 올 시즌 복귀해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지만 키움 구단은 이택근의 은퇴 후 처우에 대해 어떤 계획도 내 놓지 않았다.

은퇴식에 참석한 팬과 기념 촬영을 한 이택근. 키움 선수단 제공

은퇴식에 참석한 팬과 기념 촬영을 한 이택근. 키움 선수단 제공


이택근은 현대-히어로즈의 간판이자 KBO리그를 대표하는 오른손 강타자였다. 2003년 현대에 포수로 현대에 입단했다가 외야수로 전향한 그는 2005년부터 5년 연속 3할을 치는 등 당대 최정상급 외야수로 활약했다. 2003년과 2004년 현대의 우승을 이끌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2010년 LG로 트레이드 됐다가 2011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넥센으로 컴백해 중흥을 이끌었다. 18년 통산 타율 0.302에 1,651안타, 136홈런, 773타점을 남겼다.

레전드의 마지막을 사실상 방치한 구단을 배제하고 선수들끼리 의기투합한 이날 은퇴식은 일부 선수들의 SNS 라이브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지켜 본 팬들은 "이렇게 보내는 건 아니다", "구단은 뭐하고 선수들이 은퇴식을 하는 것이냐"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이크를 잡은 이택근은 "다른 선수들처럼 야구장에서 은퇴식을 하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선수, 팬이 열어준 은퇴식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이 자리를 마련해 준 후배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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