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美 영사관, 활동가 4명 망명 요구 거부
"홍콩은 견제 수단에 불과, 확전 원치 않아"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패권 경쟁 틈바구니 속에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이 갈 곳을 잃었다. 미국이 중국 공산당의 통제와 감시를 이유로 홍콩인들의 자치권 보장을 양국 갈등의 지렛대로 활용해 왔지만, 정작 이들의 망명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셈법에만 골몰해 인권은 뒷전인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8일 “미국이 홍콩 민주 인사들의 망명을 거절하며 확전을 피했다”고 전했다. 앞서 27일 홍콩 활동가 4명이 홍콩 주재 미 영사관을 찾아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지난해 반(反)정부 시위와 관련해 기소 위기에 처한 이도 있었다. 또 망명 계획을 미리 알아챈 중국 정부 관리들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했다고 한다. 같은 날 오전에는 홍콩 학생 운동가 토니 청(鍾翰林) 등 3명이 미국 망명을 시도하다 영사관 건물 앞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사건 처리를 전담하는 국가안보처에 체포되기도 했다.
망명 거부에는 더 이상 중국과의 갈등 소재로 홍콩 이슈를 활용하고 싶어하지 않는 미 행정부의 의중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SCMP는 “미국이 겉으론 홍콩 반정부 활동가들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망명 거부를 통해) 한계선을 설정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7월 서명한 홍콩인들의 망명을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이 사실상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홍콩 주재 미 영사관은 이번 결정에 아직 침묵하고 있다.
홍콩을 서로를 견제하는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미중의 기싸움 탓에 민주 인사들은 어떤 보호막도 없이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공산당 정권으로부터는 정치적 억압을 받고 있고, 경제 제재를 단행한 미국의 대중 보복 조치로 ‘이중고’에 처한 셈이다. 라우시우카이 홍콩ㆍ마카오연구협회 부회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망명을 받아들이면) 자칫 홍콩 영사관 폐쇄까지 갈 것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가 홍콩 시민들의 자국 정착을 저지하면서 다른 서방국가들의 향후 움직임도 주목된다. 미국이 그간 민주주의와 인권을 훈계해온 만큼 국제사회가 트럼프 행정부의 모순된 행태를 비판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현재 영국, 캐나다 등 몇몇 국가가 정부 탄압을 두려워하는 홍콩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상태다. 또 독일 정부는 14일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해 체포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22세 대학생에 난민 지위를 인정했고,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3일 홍콩 인권 운동가들의 망명을 전격 허용했다. 지난달까지 호주, 캐나다, 영국, 독일, 뉴질랜드 등 5개국에 망명을 신청한 홍콩인은 181명에 달한다.
홍콩 정부는 27일 “형사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홍콩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정치적 망명에 대한 정당성은 없다”며 잇단 망명 시도에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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