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익옹호기관 886명 판결문 1,210개 분석
성적학대가 59%·학대는 주로 '집'에서 이뤄져
200회 학대 사례도…징역형 48%에 불과해
사회복지사 A씨는 2016년부터 1년간 한 지역장애인 거주시설에 근무하면서 7명의 거주 장애인을 12회에 걸쳐 폭행했다. 주로 정해진 시간을 이탈해 샤워를 하거나 벽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등 지적장애인으로서 경미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주먹과 슬리퍼를 이용해 머리와 뺨 등을 때렸다. A씨는 이듬해 폭행죄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형량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 그쳤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데다 일부는 시설의 재입소를 희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장애인 보호라는 어려운 업무에 매진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감형사유로 참작됐다.
장애인을 학대한 가해자 절반 이상이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대부분이 중증 지적장애인인데 이들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가해자들이 피해 장애인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전반의 장애인 학대에 대한 인식 부족을 지적하며 이를 중범죄로 여길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최근 3년(2017~19년)간 장애인 학대로 기소된 886명의 1·2·3심 판결문 1,210개를 분석한 '장애인학대 처벌실태 연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장애인 관련 범죄통계가 별도로 작성되지 않아 이를 분석한 연구결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학대는 주로 성적 학대(59%)에 집중됐고, 경제적 착취(15.5%), 중복학대(14.5%), 신체적 학대(10.5%)가 뒤를 이었다. 가해자 대부분은 지인을 포함한 타인(735명)이었고, 기관종사자(75명)와 가족 및 친인척(61명)도 적지 않았다. 학대는 피해자나 행위자의 집인 경우가 35.9%로 가장 많았고, 게임방, 노래방 등 상업시설과 노상, 공원, 차량 등 기타 장소도 각각 21.9%, 21.4%에 달했다. 피해자는 74.6%가 지적장애인이었고, 92.2%가 중증장애를 갖고 있었다.
학대 기간은 3개월 미만(33.3%)이 가장 많았고, 10년 이상 장기간 학대를 한 경우도 있었는데 주로 경제적 착취와 중복학대 유형에서 나타났다. 학대 횟수는 1~3회 미만(61.5%)이 대부분이었지만, 경제적 착취와 중복학대의 경우 200회 이상(1.2%)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가해자의 51.4%는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경우는 48.1%로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해도 신체적 학대는 형량이 평균 1년8월에 그쳤고, 성학대만 3년1개월여에 달했다. 항소심에서 형량 변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변동이 있는 사건에서는 형량이 감소한 피고인이 늘어난 피고인보다 많았다. 벌금도 신체학대는 평균 252만원, 성학대는 평균 약 1,276만원이었다.
가해자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에는 △지적장애인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 △처벌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 △피고인 동료의 탄원서 △장애인복지 증진에의 기여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먹여주고 재워줬다거나 감금, 폭언, 폭행 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이 영향을 미쳤다. 중증 지적장애인들은 자신이 학대나 착취를 당해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대응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학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가해자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더욱 쉽게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런 정황이 도리어 가해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학대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장애인복지법 위반 사건에 대한 양형 기준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변호사)은 "가두고, 때리고, 굶기는 것뿐 아니라 욕하고 괴롭히고 방치하는 행위 모두가 '학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다른 무엇보다 법원의 엄중한 처벌이 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모든 사법기관 종사자들이 장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단법인 동천의 송시현 변호사도 "현재 장애인복지법위반의 경우 양형기준이 없어 양형의 정도가 적당한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이 보다 많이 적용되고 더 많은 판례가 만들어져 구체적인 법리판단이 쌓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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