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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큰별' 이건희 별세, 삼성 거듭나는 계기 삼아야

입력
2020.10.26 04:30
수정
2020.10.26 15:4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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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이끈 주역
정경유착, 경영권 세습 논란 극복해야

이건희 (왼쪽에서 두 번째)삼성그룹 회장이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0'을 찾아 이부진(왼쪽부터)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건희 (왼쪽에서 두 번째)삼성그룹 회장이 201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0'을 찾아 이부진(왼쪽부터)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이 회장은 6년여 전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응급처치로 고비를 넘겼지만 한동안 혼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후 어느 정도 의식과 신체 기능을 회복하고도 계속 병상에 의지해 왔다. 한국 재계 1세대인 선대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쓰러지기 전까지 27년간 삼성을 이끌어 국내는 물론,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공로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회장은 삼성 경영을 통해 중공업 위주 중후장대 산업 형성기와 정보통신기술을 중심으로 한 신산업 발달기 한국 경제의 성공을 견인한 기업인이다. 비록 자동차사업 실패는 오점으로 남았지만 선대에서 제일제당으로 시작했던 제조업 경영을 가전을 중심으로 한 전자, 조선을 핵심으로 한 중공업 사업으로 안정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갔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반도체 등 신사업에 과감하게 진출하는 이 회장의 판단력과 결단,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는 '신경영 선언'으로 보여 준 개혁과 혁신의 열정이다. 30대 초반에 반도체 회사를 인수하는 안목을 지녔던 이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1992년 64메가 D램 개발로 두각을 나타낸 삼성전자는 이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글로벌 시장 1위를 내주지 않는 절대강자가 됐다. 이후 스마트폰 등의 성공 역사도 이런 토대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 결과 삼성은 선대의 주문에 따라 이 회장이 배우려고 애썼던 소니 등 일본의 유수한 기업을 매출에서 이미 10여년 전에 넘어섰다. 세계 시장에서도 거대 글로벌 기업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룬다. 삼성전자만 시가총액으로 국내 전체 상장주식의 3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회장의 경영 수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견인했던 재계의 큰 별"(경총) "글로벌 도약을 이끌며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민주당)이라는 국내 각계의 평가는 물론이고 "삼성의 큰 사상가"(뉴욕타임스)라는 해외 언론의 찬사가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 회장의 삼성 경영은 빛을 발했던 만큼 어두웠던 이면을 간과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개발독재 시절의 정경유착은 삼성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회장을 둘러싼 일련의 비자금 사건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이 회장이 옥살이를 치르고도 경영권을 승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서 뇌물을 주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오랫동안 집요하게 고집했던 무노조 경영도 노동자와의 끝없는 갈등을 부른 것은 물론,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었다. 이 회장이 결국 청산하지 못하고 떠난 삼성의 치부가 아닐 수 없다.

현재진행형인 경영권 세습 논란이야말로 삼성이 극복해야 할 유산이다. 이 회장 생전 에버랜드 주식 증여로 시작된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시비는 이번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문제로 또다시 법의 심판대에 올라 있다. 승계 합법 여부는 사법부가 엄정히 가리겠지만 경영권 세습이 여전히 문제 된다는 사실은 브랜드 가치 세계 5위라는 삼성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삼성이 이런 구태들과 과감하게 극복해 또 한 번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의 혁신 정신을 올바로 계승하는 길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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