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불교의 지옥은 선택해서 가는 곳

입력
2020.10.21 16:00
수정
2020.10.21 16:46
25면
0 0
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옥은 거의 모든 종교에 존재하는 고통과 징벌의 상징이다. 지옥하면 흔히 땅속에 위치한 처절하고 암울한 사후세계를 연상한다. 사실 ‘지옥(地獄)’이라는 한자 역시 ‘지하 감옥’이라는 의미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흥미롭게도 지옥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기원 전후다. 그 이전 시기 지옥은 세계의 끝인 변방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 세계의 중앙에는 신들의 세계인 신령한 우주산(宇宙山)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하열한 세계가 펼쳐진다고 생각했다.

이는 문명과 야만의 대비로 이해될 수 있는 중심과 변방에 대한 차별이다. 이러한 중심과 변방의 극단적인 분기가 바로 ‘신들의 세계’와 ‘어둠의 지옥’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왜 지옥이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희랍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사후세계인 하데스의 세계로 간다. 그곳에서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잡아 스틱스의 강을 건너 이 세계로 넘어온다. 이는 이 세계와 사후가 수평선상에 존재하는 연결된 공간임을 알게 한다. 지옥 역시 사후세계에 속하는 곳이니, 이 또한 땅속에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원 전후가 되면 대상(隊商)무역의 발달로, 수평 세계 속에 더는 사후세계나 신들이 존재할 곳이 없게 된다. 미지의 영역이 축소되면서 인간의 사고가 변모한 까닭이다. 이로 인해 ‘하늘 위의 신’과 ‘땅속의 지옥’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대두한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세계관이 바뀌는 것이다.

불교는 기독교 같은 유신론적 종교와 달리 사후세계에 심판자가 없다. 유신론 종교에서 천상과 지옥을 나누는 기준은 신에 대한 믿음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에 대한 믿음에 따라, 천국은 신의 선물이며 지옥은 징벌의 공간이 된다. 그런데 예수의 연대가 늦기 때문에, 이전 시대 인물인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등은 예수를 믿을 기회조차 없이 곧장 지옥행이 결정된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깊은 고민이 바로 단테의 '신곡(1321)' 속 연옥이다.

심판자가 없다면, 불교에서는 천상과 지옥이 어떻게 나뉘는 것일까? 여기에 적용되는 원리가 바로 ‘유유상종’이다.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오물이 모여 하수가 되듯, 동류가 상응해 하나의 집단과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뭉치면 천상이 되고 부정적으로 모이면 지옥이 된다. 이는 마치 이 세계에 상류층과 감옥이 존재하는 것과 유사하다. 즉 상류층과 감옥이 하나의 독립된 거대한 세계를 구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교의 천상과 지옥이다.

감옥은 원해서 가는 곳은 아니지만, 자신이 선택한 잘못된 행위의 결과로 가게 된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지옥은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이렇게 모인 이들끼리 서로가 고통을 주고 고통을 받는 세계, 이곳이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지옥은 굳이 땅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 즉 땅속의 지옥이란, 불교적으로는 다분히 상징성인 것이다.

천상의 세계 역시 지옥의 구성방식과 같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상류층과 같은 천상에는 지능적인 악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세계의 상류층 역시 모두가 선은 아니다. 상류층에는 때로 기득권의 세습 집단도 있고, 또 교묘하면서 지능적인 악도 존재한다. 불교의 천상에는 이런 세 종류의 세계가 모두 있다. 선한 존재들이 모인 곳, 무능한 기득권자들의 세계, 그리고 지능적인 악이 층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지능적인 악인데, 이를 천마(天魔) 즉 마신이라고 한다. 이들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전 세계에 피해를 주고 자신들은 빠져나간 것처럼, 고도로 지적인 동시에 위험하다. 이들이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은 대형 로펌이 부당한 권력과 부도덕한 자본을 변호하면서도, 더욱더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것과 유사하다. 즉 천마는 지옥을 넘어서 있는 부도덕한 존재들인 셈이다. 이와 같은 구조도 가능한 것이 불교의 천상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불교의 천상과 지옥은 이 세계의 구성방식을 상당 부분 모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