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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사망자 명의로 마약류 처방…어떻게 가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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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사망자 명의로 마약류 처방…어떻게 가능했나

입력
2020.10.19 15:52
수정
2020.10.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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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수진자 조회시스템엔 '자격상실자'로 나와
도용자 "수급 안 받겠다"면 진료ㆍ처방 가능
의사들 "본인 확인 못해...노숙인 명의 도용 많아"
외국서 비싼 치료보다 친인척 명의 빌려 치료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의료용 마약류 관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의 명의까지 도용해 처방 받은 건수가 최근 2년간 154회에 달하고, 심지어 12년 전 사망한 사람의 이름으로 처방 받은 사례도 드러났다. 병원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 사망자를 포함한 명의 도용의 배경으로 꼽힌다.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받은 ‘사망자 명의도용 마약류 처방 세부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병ㆍ의원 등에서 사망자 49명의 명의로 154회에 걸쳐 총 6,033개의 의료용 마약류가 처방됐다.

가장 많이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는 알프라졸람(항불안제)으로, 총 2,973개였다. 졸피뎀(수면제) 941개, 클로나제팜(뇌전증치료제) 744개, 페티노정(식욕억제제) 486개, 로라제팜(정신안정제) 319개, 에티졸람(수면유도제) 200개, 펜터민염산염(식욕억제제) 120개, 디아제팜(항불안제) 117개, 펜디라정(식욕억제제) 105개 등도 적지 않았다.

특히 사망자 명의를 도용한 사람 중에는 2018년 11월부터 약 1년간 30번에 걸쳐 총 3,128개의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 받은 사례도 확인됐다. 2007년 사망자 명의로 12년이 지난 작년에 마약류를 처방받은 사례도 드러났다.

의료용 마약류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인데, 관계기관이 수사하고 있다지만 처벌받은 경우는 현재까지 없다.

사망자 명의로도 진료와 처방이 가능한 원인은 현행 국민건강보험 수진자 조회시스템이 ‘사망자’와 ‘자격상실인’을 구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 의원은 지적했다. 실제 사망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도 건보 수진자 시스템에는 ‘자격상실인’으로만 나온다. 사망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셈인데, 이 경우에도 도용한 환자가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 등에 진단ㆍ처방 시 반드시 본인 확인을 하도록 강제하는 의무 조항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 의사들도 이런 허점을 이용한 명의 도용 문제가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노숙인 명의를 여러 개 갖고 있으면서 마약류를 여러 병원을 돌며 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프로포폴 등 향정신성의약품은 사용량을 의료당국에 신고하고 한 사람에게 집중될 경우 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다른 치료의 경우는 도용해도 거를 방법이 없다. 해외에서 비싼 치료를 받느니 귀국해 형제나 자매의 이름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경기 부천의 한 치과의사는 “사랑니 발치 본인 부담금이 해외는 100만원이고 우리는 겨우 3만원이라면 어디서 이를 뽑겠느냐”며 “다들 친인척 주민번호로 치료를 받는데 본인 여부를 확인하려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 병원에서도 일부러 확인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건강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이 국민들이 낸 건보료를 갉아먹고 있다는 얘긴데,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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