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학대 총망라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인력부족 상담사 혼자 신고부터 모두 처리
1명이 연간 최고 93건까지 떠안아
한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사 A씨는 최근 장애인학대 신고를 받고 현장조사에 나섰다가 봉변을 당했다. 성추행 사건이었는데 가해자가 술을 거나하게 마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고, A씨가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식칼을 손에 쥔 채 욕설을 내뱉은 것이다. 그는 A씨를 향해 "가만 두지 않겠다"거나 "밤길 조심하라" 등의 위협적인 말도 서슴없이 내질렀다. 현장조사는 2인1조가 원칙이지만 A씨가 근무하는 곳은 기관장 포함 4명이 전부라 이를 지킬 수 없었다. 결국 이날 A씨는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해당 기관의 기관장은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발생한다"며 "상담사 한 명이 수십, 수백 건의 사건을 도맡다 보니 기본조차 지키기 어렵고, 사건 해결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고 털어놨다.
장애인학대 문제를 총망라하기 위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2017년 본격 개관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인력 탓에 사건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150만~300만 인구가 사는 도단위 지역에 기관인력이 2~4명뿐인 곳이 대부분이고, 상담사 1인당 사건 건수는 최대 93건에 달했다.
19일 보건복지부가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된 19개 장애인권익옹호기관별 인력은 최소 2명에서 최대 10명에 그쳤다.
부산 상담사 2명뿐…1명이 93건 처리
지방비와 5대 5로 매칭된 국고로 지원되는 금액으로 총 4명까지 고용할 수 있지만, 이는 기관장(1명)과 행정인력(1명)을 포함한 거라 정작 상담사는 2명뿐이다. 지자체 추가 지원이 없는 부산이나 대전, 세종, 충북, 충남, 경북, 경남, 제주 등 8개 시도는 상담사 2명이 상담과 조사, 피해자 지원에 사후관리까지 다 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부산의 경우, 지난해 장애인학대의심사례가 186건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경기도(498건) 다음으로 많았지만 상담사가 2명 밖에 없어 인당 93건을 떠안았다. 이 밖에도 연간 1인당 50건 이상의 사건을 감당하는 곳이 지난해 기준 세종(63건), 경기(59.8건), 충북(77건), 충남(73건), 경북(76건), 경남(59건) 등 6곳에 달했다.
이는 앞서 정부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설립하기 전 맡긴 용역결과에 비해서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복지부가 2016년 외부기관에 맡긴 용역자료에 따르면 지역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는 변호사 1명을 포함해 총 14명이 필요하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기본적으로 △장애인 학대의 신고접수 △현장조사 및 응급보호 △학대행위자에 대한 상담 및 사후관리 △예방관련 교육 및 홍보 등 업무를 소화해야 하다 보니 최소한 현장조사와 교육홍보, 사례관리, 행정지원을 구분해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관 내 인력부족은 장애인학대 사례관리와도 직결된다. 장애인학대는 사건 특성상 72시간 내에 신속하게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실제 이 시간 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지난해 기준 48.9%에 불과했다. 최대 한 달 넘게 걸리는 경우도 8.78%에 달했다. 상담사 인력이 부족해 기관장과 행정인력도 상담ㆍ조사 업무에 투입되지만 충분하지 않다. 도단위 지역의 경우 기관이 위치한 곳에서 가장 먼 곳은 자동차로 편도 2~3시간이 걸려 하루 한 건을 처리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도 조사해야 하는데 왕복 4시간 이상 걸리면 여러 군데 가기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전남처럼 섬이 많은 지역은 더욱 열악하다"고 토로했다.
상담인력과 자문형 변호인력 모두 부족
정부용역에서 제안한 변호사 인력이 갖춰지지 않다 보니 피해 후속조치로 이뤄지는 고발도 절반이 불기소로 끝난다. 전문적 법률지식을 갖추지 않은 상담사 등이 소장을 작성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 지역 기관장은 "일단 시급한 건 상담인력이지만 자문형식으로라도 변호인력이 꼭 필요하다"며 "그래야 가해자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부족한데 일은 많고 현장에서는 가해자한테 협박 당하기 일쑤다 보니 상담사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며 "사후관리나 교육, 예방, 홍보까지는 솔직히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일각에선 현재 장애인과 아동, 노인으로 분리돼 있는 전문기관들을 통합해 관리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대ㆍ유기ㆍ방임 사건은 장애인ㆍ아동ㆍ노인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김진우 덕성여자대학교 총장직무대리(사회복지학전공)는 "한 시군구에서 학대ㆍ유기ㆍ방임 사건이 발생하면 통합된 기관이 가족 전체를 보고 접근한 뒤 각각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며 "중앙정부가 자꾸 범주를 달리해 각각의 전달체계를 구성하니 규모가 작은 시군구 차원에서는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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