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입에 머금었던 물이 요란하게 터져 나오면서 벼락 같은 기침도 같이 쏟아졌다. 급하게 삼킨 미지근한 물은 목구멍 안에서 생명력을 얻기라도 했는지 폭력적으로 발을 구르며 머리에 달린 모든 구멍으로 다시 빠져나오려고 야단이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괴로워했다. 기침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기침이 멎은 후에도 한참 동안 깔깔한 심호흡을 해야 했다. 코와 목 안의 점막들이 까맣게 탄 느낌이었다. ‘죽을 뻔했다.’ 혼잣말을 하는데 우리 할아버지랑 닮은 목소리가 나왔다. 척척한 입 주변을 손바닥으로 눌러 닦았다. 바닥과 무르팍이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날 아침에 물 마시다가 죽을 뻔했다. 진짜 죽지는 않았으나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기침을 하던 순간에는 ‘이러다가 진짜 죽겠는데? 망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 아빠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던 걸로 보아 나는 어쩌면 진짜로 죽기 직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턱 밑으로 늘어진 투명하고 걸쭉한 침을 휴지로 닦으며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 하고 짧게 웃었다. 물 마시기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삼십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온 일이었다. 다시 말해 일도 아니었다. 일도 아닌 일 때문에 일이 날 뻔했다니. 허무함에 맥이 탁 풀렸다.
유리컵에 물을 따른 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곧바로 실행된 한글 화면에 어제 쓰다 만 글이 있었다. 전날 밤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 끙끙 앓다가 관둔 글이었다. 맺지 못한 수필의 말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똥을 써라 똥을 써. 그냥 똥이나 싸라.
착잡한 마음으로 새 한글 창의 흰 화면을 노려보며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똥글을 써서 좌절할 것인가 참담해하다가 번뜩, 글이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물도 제대로 못 마시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자기 비하를 하자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모든 인간은 맨날 하는 일, 그래서 일 같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도 필연적으로 실패를 한다. 물을 마시다 사레들리고, 걷다가 발목을 접질리고, 매끼 먹는 밥인데도 양 조절을 못 해서 때때로 과식을 하고, 매일 씻는데도 샤워기 레버를 한 번에 적정 수온에 맞추질 못한다.
하물며 ‘진짜’ 일에서 어떻게 삑사리가 안 날 수 있을까. 삑사리 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삑사리가 나지 않는 게 엄청난 기적이다.
잘해야만 하는 일이 틀어져서 자신을 괴롭히고 싶은 짓궂은 충동이 들 때면 물을 잘못 마셔 고통스럽게 바닥을 기며 기침하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그 기침이 멎은 후에 나는 다만 ‘하’ 하고 짧게 웃었을 뿐, 물 하나도 제대로 못 마시는 놈이라고 울며불며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물을 잘 못 마시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경우도 없는데 말이다. 바꿔 생각하면 ‘진짜’일을 망치는 건 사레드는 일보다는 덜 바보 같고 더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날, 내가 쓴 글에 또다시 좌절할까봐 겁이 났지만 꾹 참고 첫 줄을 썼다. 사레들리는 게 무서워 갈증을 참았던 적은 없으니까. 글을 쓰는 동안 책상에 놓인 물을 신중하게 꿀꺽꿀꺽 삼켰다. 일도 아닌 일에서도 실패를 맛보는 게 인간임을 기억하면서 진짜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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