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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읽느라 지문이 없어졌어요!" 시각장애 초선의 국감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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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읽느라 지문이 없어졌어요!" 시각장애 초선의 국감 분투기

입력
2020.10.16 04:30
수정
2020.10.16 08:2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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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점자로 된 질의서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질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1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점자로 된 질의서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질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정감사 자료 읽느라 지문이 다 없어진 것 같아요!"

14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반질반질해진 손가락 끝을 보여 주며 말했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산더미 같은 국감 자료를 '손 끝'으로 짚어 읽어내린다. 책상 위엔 수천 쪽 짜리 자료가 '점역'(문자를 점자로 바꾼 것)된 상태로 쌓여 있었다. "의원회관 드나들 때마다 지문을 찍는데, 요즘은 지문 인식이 잘 안 될 정도"라면서, 그는 싱긋 웃었다.


김 의원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점자로 된 질의서를 손으로 더듬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 의원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점자로 된 질의서를 손으로 더듬고 있다. 오대근 기자


점자 전쟁, 무한 리허설... '이런 국감 준비'

김 의원의 국감은 '점자와의 전쟁'이다. 그의 사무실인 의원회관 601호에는 점자 프린터가 "위잉위잉"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김 의원은 국감 자료를 점역본으로 받는다. 정부가 점역본을 따로 제작한다. 1쪽짜리 문서가 점역본으로 바꾸면 약 3쪽이 된다. 김 의원이 소속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의 이번 국감 피감기관은 56곳. 피감기관 1곳이 수백~수천 쪽 분량의 국감 자료를 제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의원은 수만~수십만 쪽의 점역 문서를 3, 4주 안에 읽어야 한다.

김 의원의 국감 준비는 바쁘지만 느리다. 보좌진과 마라톤 회의 끝에 질의서를 만들면, 점역 전문 비서가 점자 질의서로 바꾼다. 준비가 이걸로 끝이 아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촘촘한" 실전 준비를 해야 한다. 국감장에서 메모를 하거나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질의 시간 15분동안 벌어질 모든 상황을 가정해 리허설을 수없이 거듭한다.

질의서와 시나리오를 몽땅 외우고서야 김 의원은 국감장으로 향한다. 시각장애 안내견 '조이'와 함께다.

김 의원의 보좌진 10명 전원은 21대 국회 개원 전에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 체험 교육을 받았다. '혼연일체'라고 불러도 될 만한 팀워크 덕에 '장애'가 '장벽'이 아닌 업무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김 위원은 "저도 보좌진도 퇴근 시간이 없을 정도로 강행군"이라면서 "유독 국회에 있는 걸 좋아하는 조이는 '국감체질견(犬)'인 것 같다"며 또 웃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안내견 조이와 함께 13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현장국감에 참석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안내견 조이와 함께 13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현장국감에 참석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정부가 잘 한 건 잘 했다고 해야죠"

김 의원은 국감 철학은 다른 야당 의원들과 좀 다르다. 정권 공격만 하다 끝나선 안 된다고 믿는다. 정부가 잘 한 일엔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12일 문화재청 국감에서도 그랬다. 김 의원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출판한 '천연기념물 멀티미디어 감각 책'을 들고 나와 국감장에서 시연했다. 특수 펜과 점자로 천연기념물 도감을 공감각적으로 구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김 의원은 정재숙 문화청장에게 "문화재청의 훌륭한 사례 다른 부처 변화를 이끄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국감에서도 칭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응원했다. 정 청장도 "국감에서 칭찬받기는 처음"이라고 즐거워했다. 도종환 문광위원장은 "문화재청은 더 많은 시리즈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계산해 제출해 달라"고 힘을 보탰다.

김 의원도 '야성(野性)'이 뭔지 잘 안다. 그러나 "야당 의원 100명 중에 나 같은 사람 1명 쯤은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국감에서 의원은 국민들이 진짜 질문하고 싶은 것을 물어야 하지 않나요. 저는 정치적 공방 속에 다뤄지지 않는 '틈'을 메우는 일을 하러 국회에 온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김 의원은 또 한번 빙그레 웃었다.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위해 회의 중인 김예지 의원과 의원실 직원들. 이혜미 기자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위해 회의 중인 김예지 의원과 의원실 직원들. 이혜미 기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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