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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히스토리… 고궁, 가을 밤낮을 업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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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히스토리… 고궁, 가을 밤낮을 업고 놀다

입력
2020.10.16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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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경복궁 경회루에서 ‘심청 이야기’를 각색한 퓨전 창극 ‘경회루 판타지-궁중연화’가 공연되고 있다. 여성 배우와 무용수가 탄 달 모양 배를 대형 크레인으로 수상 무대 궁중에 높이 끌어올렸다. 17일까지 매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펼쳐지는 이 공연은 올해 ‘궁중문화축전’의 오프라인 프로그램이다. 뉴스1

14일 밤 경복궁 경회루에서 ‘심청 이야기’를 각색한 퓨전 창극 ‘경회루 판타지-궁중연화’가 공연되고 있다. 여성 배우와 무용수가 탄 달 모양 배를 대형 크레인으로 수상 무대 궁중에 높이 끌어올렸다. 17일까지 매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펼쳐지는 이 공연은 올해 ‘궁중문화축전’의 오프라인 프로그램이다. 뉴스1

14일 밤 경복궁 경회루. 연못의 무대 위로 달이 떴다. 그 달이 스르르 아래로 내려온다. 자세히 보니, 달 모양의 배다. 사람이 타고 있다. 흰 한복을 입은 여자 둘이다.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배의 돛대 줄에 다시 매달려, 한 여자는 춤까지 춘다.

이 초현실적인 퍼포먼스는 심청의 아버지 학규가 먼저 세상을 뜬 아내 곽씨부인과 재회하는 장면이다. 극중에서도 이건 그저 꿈일 뿐이다. 분수로 만들어낸 영사막 ‘워터 스크린’에 그려진 모습도 학규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다 안다 싶었던 얘기를 첨단 기술로 새롭게 연출해내자 관객은 탄성을 질렀다. 퓨전 창극 ‘경회루 판타지-궁중연화’의 한 장면이다.

밤: 환상

임금이 살던 궁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을 불어넣기 좋은 공간이다. 몽환의 숙주는 어둠이다. 올해 ‘궁중문화축전’은 가을 밤 궁궐을 허구의 공간으로 변신시킨다. 대표적 프로그램이 심청전을 각색한 ‘경회루 판타지’다.

경회루는 실험 무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회루의 건축미 자체가 빼어나기도 하지만, 탁 트인 공간에 자리잡아 활용도가 높다. 경회루 무대가 아니었으면 용궁에서 어머니를 만난 뒤 다시 물 밖 세상으로 돌아오는 심청이 그렇게 까마득한 하늘 위까지 치솟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 공연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연출”, “정말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아름다웠다”는 관객 평은 괜한 게 아니다.

물도 기여한다. 경회루 연못은 고스란히 인당수의 이미지다. 무대뿐 아니라 객석도 연못 위에 있어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어떤 장면도 꿈처럼 바꿔 버리는 워터 스크린 역시 유용한 연출 도구다.

막히지 않은 공간에서 스케일이 큰 작품을 하니, 더 많은 사람이 공연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경회루 하단에 빔으로 쏴 주는 자막도 큼직하다. 무대와 객석 간 거리는 클로즈업 영상이 메워준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선과 서사를 16, 17일 공연 생중계 때 감상할 수 있다.

14일 밤 미디어 아트 전시인 ‘창경궁, 빛이 그리는 시간’이 열리고 있는 창경궁 내 연못 ‘춘당지’ 주변이 다양한 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 전시는 올해 ‘궁중문화축전’ 프로그램 중 하나다. 연합뉴스

14일 밤 미디어 아트 전시인 ‘창경궁, 빛이 그리는 시간’이 열리고 있는 창경궁 내 연못 ‘춘당지’ 주변이 다양한 빛으로 물들어 있다. 이 전시는 올해 ‘궁중문화축전’ 프로그램 중 하나다. 연합뉴스

환상적 스펙터클 연출 수단은 아무래도 빛이다. ‘창경궁, 빛이 그리는 시간’은 옛 판타지가 짙은 궁이라는 곳에 또 한번 가상 세계 판타지를 포개는 ‘미디어 아트’ 전시다. 관람은 가을 밤 궁 산책처럼 진행된다. “궁궐에 밤이 찾아오면 신비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는 배우 이선균의 오프닝 내레이션을 들으며 숲길에 들어서서 창경궁 내 연못인 ‘춘당지’로 향하는 약 20분간의 짧은 여정은, 마치 미지의 영역으로 탐험해 들어가는 느낌이 들게 한다.

홀로그램, 프로젝션 맵핑, 조명, 축광 물질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빛은 스모그와 퓨전 국악, 종소리 같은 음향, 실제 가을 밤 바람에 버석대는 나뭇잎 소리 등과 어우러져 잠시나마 분주하고 시끄러운 현실을 잊게 해 준다. 예술ㆍ기술 감독을 맡은 신재희 브이오엠랩 대표는 “연못과 나무의 정령들이 쏟아져 내려와 길을 따라 퍼져 나간다는 설정”이라며 “음향은 나무가 속삭이는 소리처럼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낮: 역사

밤 프로그램이 궁의 환상이라면, 낮 프로그램은 근현대사의 속살을, 궁의 현실을 보여준다. 덕수궁 전시가 특히 그렇다. ‘혼례, 힙(hip)하고 합(合)하다’(덕홍전)와 ‘대한제국 황제의 궁궐’(석조전)은 엄격한 고증을 거친 삶의 흔적들을 내놓는다.

14일 덕수궁 덕홍전에서 관람객들이 ‘혼례, 힙하고 합하다’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신랑은 양복을, 신부는 한복을 입은 100년 전 혼례 장면이 정면에 재현됐다. 연합뉴스

14일 덕수궁 덕홍전에서 관람객들이 ‘혼례, 힙하고 합하다’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신랑은 양복을, 신부는 한복을 입은 100년 전 혼례 장면이 정면에 재현됐다. 연합뉴스

혼례복 변천사(史)가 테마인 ‘혼례, 힙하고 합하다’의 메인 전시는 서양 코트를 입은 남성과 흰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여성의 근대 혼례 마네킹 재연이다. 다만 여성 한복도 서양식 웨딩 드레스와 닮았다. 서영희 감독은 “1920~30년대 여성의 웨딩 한복은 동ㆍ서양 문화가 적절히 혼합된 양상”이라며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의 웨딩 드레스는 ‘하이 웨이스트’(높은 허리 라인)가 공교롭게 전통 한복의 저고리ㆍ치마 경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대한제국 황제의 궁궐’전에서도 동ㆍ서양 조합이 줄곧 눈에 띈다. 황궁에 적합한 전통 양식 건축물들 옆에 서양식 건물이 나란히 세워진 경운궁이 전형적이다. 박상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학예연구사는 “용 문양 등으로 주술을 걸어 둔 전형적 동양 왕 의자인 덕수궁 중화전 용상과 달리 창덕궁 희정당 의자는 실용을 중시한 서양식”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 정보는 궁중문화축전 홈페이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방문하면 알 수 있다. 대면 프로그램이 집중 편성되는 ‘오프라인 주간’은 18일까지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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