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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아닌 세종 보육교사 극단 선택...4명 중 1명 학부모로부터 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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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아닌 세종 보육교사 극단 선택...4명 중 1명 학부모로부터 폭언

입력
2020.10.13 10:22
수정
2020.10.13 10:3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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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정책연구소, 보육교사 1024명 설문
모욕적 비난, 고함, 욕설 등 연 4회 이상 24%
차별대우에 위협 경험도 토로?
과반은 '폭력 시 행동방침, 보호장치 없다'

지난 6월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A(30)씨가 학부모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이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학부모들은 A씨가 아동학대를 했다며 고소하고 그를 괴롭혔지만, 실제 수사에서는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이 사실은 지난 5일 유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억울한 누명을 씌운 학부모들에 강력한 처벌을 내려 달라'는 글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A씨가 겪은 폭력은 단지 그에게만 찾아온 ‘불운’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13일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정책연구에 실린 ‘어린이집의 작업장 폭력 발생 위험과 보육교사 보호방안’에 따르면, 보육교사 중 학부모의 정신적ㆍ성적 폭력에 노출된 위험군은 16.7%로 추정됐다. 이는 연구진이 ‘보육교사 노동자 인권 인식 및 교육 현황’에 대해 1,024명에게 설문한 결과를 바탕으로 어린이집의 폭력 발생 위험과 보호체계 등을 종합한 결과다.

세종시 보육교사의 억울함을 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13일 오전 9만여명을 넘었다.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세종시 보육교사의 억울함을 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13일 오전 9만여명을 넘었다.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보육교사 중 업무수행 시 학부모로부터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 등을 연 4회 이상 들었다고 답한 경우는 23.6%로, 4명 중 1명에 육박했다. 이 중 월 1회 이상 욕설을 들었다는 경우도 3.2%였다. 학부모로부터 직위ㆍ성ㆍ나이 등을 이유로 차별 대우를 당했다는 응답도 16.7%였고, 업무수행 시 학부모에게 위협을 당했다는 경우도 13.8%나 됐다.

보육교사가 직장 내에서 당하는 괴롭힘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직장 상사나 동료에 모욕적인 비난, 욕설을 들어봤다고 답한 보육교사는 22.9%였고, 업무수행 시 지위ㆍ나이 등으로 동료에게 차별 대우를 당한 경우는 20.2%에 달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관계에서 주로 시달리는 것과 달리, 보육교사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는 얘기다.

직장이 직원을 보듬어주는 울타리가 돼야 하지만, 학부모의 폭력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는 제도를 갖춘 어린이집은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56.5%는 ‘어린이집에 부모의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과 행동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답했고, ‘부모들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나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경우도 52.4%였다. 연구진은 △보육교사의 연령이 어릴수록 △민간 어린이집일수록 학부모로부터 정신적 폭력을 당할 위험이 높고, 보호체계 수준이 낮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은 고객의 폭언 등으로 건강 장해가 발생할 경우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 또는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보육교사도 이런 감정노동 보호책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학기 중 보육교사의 업무를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또한 세종시 어린이집 사건처럼 갈등 조정과정에서 악소문이 날 경우 이를 제재할 방도도 없는 상황이다.

조사를 진행한 최효미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현행 어린이집 운영 지침상 학부모로부터 폭력이 발생해도 해당 아동을 퇴원 조치할 수 없고, 소규모 어린이집의 경우 운영상 문제로 원장이 제재에 적극성을 띠기 어렵다"며 "고용노동부에서 제시하는 일반적인 지침 대신 소규모 민간 어린이집에 적용가능한 폭력 대응 매뉴얼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종=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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