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는 왜 낙태죄 정부안에 반대하는가?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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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정부는 낙태죄 관련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2017헌바127)을 내린 후 후속 조치다.
지난해 헌재는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2012년 결정을 뒤집고,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며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2년 결정에서는 태아를 여성과 별개의 생명체로 보고 생명권을 절대적으로 인정했지만, 2019년에서는 임신과 출산, 양육이 여성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자기결정권의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헌재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간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입법과 정책이 필요하다며, 결정가능기간이나 사회적·경제적 사유,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 구체적 내용은 입법부에 위임했다.
이에 따라 발표된 정부 개정안은 형법상 낙태죄는 유지하되, 모자보건법에 있던 허용규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낙태죄를 유지함으로써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키되, 14주 또는 24주라는 결정가능기간을 명시하고 상담의무와 숙려기간, 의사의 설명의무 등 처벌면제 사유를 규정함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 영역을 존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개정안에 대해 여성계 다수는 “낙태죄 위헌성을 그대로 유지한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 까다로워진 정부안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낙태죄는 존치하되 임신 14주 이내에는 의사에 의해 의학적 방법으로 이뤄진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 또한 임신 15~24주인 경우에는 ①강간 또는 준강간 등 범죄로 인한 임신 ②근친 간 임신 ③임신으로 인해 여성이 사회적, 경제적 심각한 곤경에 처할 경우 ④임신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여성의 건강을 해칠 경우에 해당하면 처벌하지 않는다. 이중 사회ㆍ경제적 이유에 해당하려면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상담을 받고 확인서를 발급받은 후 24시간 숙려기간이 지나야 한다.
이러한 개정안은 표면적으로는 새롭게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현행 법률에서 허용사유 일부와 절차를 변경, 상세화한 것 외에 큰 변화가 없다. 우선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처벌되지 않는 사유로 문제시됐던 부모의 우생학적 사유가 제거됐으며 대신 헌재가 인정한 사회경제적 사유가 도입됐다. 그 동안 실효성이 없었던 배우자 동의 요건이 여성의 상담요건과 숙려기간, 의사의 설명의무로 대체됐다. 결국 낙태죄로 처벌되지 않는 절차를 보다 상세화한 것으로, 임신 14주 이내에는 사유 확인 필요 없이 임신중절을 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24주까지는 허용사유를 확인하는 절차를 기입한 것이다.
정부개정안의 한계는 여성들의 임신중절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개정안으로 새로 도입될 절차에 따르면, 여성들은 모자보건법에 따른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확인서도 발급받아야 하며, 24시간 경과 후 인공임신중절을 받을 수 있다. 병원에서는 피임 등 추가적인 의사의 설명을 다시 들은 뒤 동의한다는 문서에 서명날인을 해야 한다. 병원에 가도 의사의 신념에 따라 시술을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때는 다시 상담기관을 통해 시술 가능한 병원을 소개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임신 주수가 초과돼 처벌받을 수 있는 여성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은 여러 번 상담기관과 병원을 방문하고 개인정보를 무수히 남겨야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의무에 대한 규정이나 의사 거부권 행사시 시술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연계해줘야 한다는 규정은 개정안에 없다. 해외에서는 상담기관이나 상담원의 신념에 따라 태아의 심장박동을 듣게 하는 등 편파적인 상담이 문제가 돼 중립적 상담 의무 규정을 도입한 입법례들이 있지만, 정부안에는 이 역시 언급이 없다. 결국 정부는 헌재에서 요구하는 생명보호 가치와 자기결정권 간의 최적화 요청을 담아내는 대신 다시 여성에 대한 징벌을 강화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또 기존 모자보건법상 규정이 형법으로 옮겨짐으로써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형벌로 다스리는 형법은 다른 법률보다 명확성의 원칙이 강하게 요청되기 때문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범죄행위, 근친, 건강 위험 등 사유에 엄격한 기준이나 입증을 요청하지 않던 것과 달리 형법에서는 훨씬 엄격하게 적용될 수 밖에 없다.
폴란드의 경우 심각한 건강 위험으로 낙태한 경우 처벌되지 않지만, 의학적 판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의사들이 시술을 거부하는 사례가 흔하다. 라트비아나 폴란드는 강간 등 사유와 관련해서 검사의 확인서를 요구하는데, 수사 결과를 기다리다 허용기간이 초과돼 출산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뉴질랜드나 영국 맨섬(Isle of Man) 등은 강간 등 사유에 대해 여성의 진술에 근거해 의사가 판단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개정안에는 사회경제적 사유 외 허용사유에 대해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 혼란이 예상된다.
임신 주수라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임신 주수는 여성과 태아의 신체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정치다. 네덜란드는 24주까지 임신중절을 허용하지만 형사처벌을 우려하는 의사들이 임신 주수를 보수적으로 적용해 실제로는 16주 이내 시술만 이뤄진다. 결국 24주라는 허용기한은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될 여지가 높다.
낙태죄 처벌 유지, 생명보호에 효과적인가?
기본적으로 정부개정안은 원칙은 낙태죄 처벌이고, 추가적으로 처벌을 면제하는 사유를 규정하는 형법 규정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낙태죄로 고소ㆍ고발되는 경우 여성이나 의사가 우선 형사입건되고 수사과정에서 처벌 면제에 해당함을 입증해야 처벌되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한다. 헌재결정문에도 명시된 것처럼 낙태죄 고소ㆍ고발의 주체는 주로 전 남편이나 애인, 시부모 등으로, 여성에 대한 괴롭힘이나 이혼소송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러한 낙태죄 남용의 위험은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각에선 정부안이 해외와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이번 개정안처럼 형법 규정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1960~70년대 관련 법률을 개정한 국가들이다. 종교국가의 전통을 가지고 낙태죄를 엄격히 적용하다 사회 변화에 따라 개정했던, 이미 반세기 전의 법률이다. 그 이후에 개정을 추진한 프랑스나 벨기에는 여성을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규정을 삭제하고 보건법이나 특별법 개정을 통해 합법의 범위를 확대했다. 2000년대 이후 낙태죄 관련 개정을 활발히 하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은 낙태죄를 폐지하거나 임신 후기에 한하여 허용사유를 두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 추세는 이미 세계적 흐름이다. 유엔(UN),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국제기구들은 낙태죄와 허용절차의 강화를 여성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저해하고 건강권을 침해하는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 2017년 구트마허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이나 동유럽 국가들이 서유럽이나 오세아니아 지역에 비해 2배 이상 낙태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또 낙태죄가 엄격할수록 위험한 낙태를 시행하는 비율이 높다. 결국 낙태죄 처벌이나 절차적 요건을 강화하는 입법은 여성의 임신중절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오히려 의료서비스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낙태율과 위험한 낙태 비율을 높여 태아의 생명보호와 여성의 건강권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WHO는 낙태 비범죄화 및 절차적 제한 요건을 완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낙태죄를 처벌하는 방식으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도 어렵고 생명보호라는 가치를 실현하기도 어렵다. 이를 실현하려면 처벌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모자보건법상 상담 등 서비스 제공이 의무가 아닌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보다 많은 여성들이 건강과 인권을 보장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법여성학 박사로 주로 젠더폭력과 공동체규범 및 분쟁해결을 연구한다. 공저로 '성폭력에 맞서다: 사례·담론·전망' '성폭력 법정에 서다: 여성의 시각에서 본 법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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