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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템'이 된 히말라야 셰르파

입력
2020.10.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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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리타(Ang Rita, 1948.7.27~ 2020.9.21)

네팔 셰르파 앙 리타는 1982~96년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19차례 모두 무산소로 등반했고, 겨울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른 유일한 산악인이다. 그가 숨지자 수많은 매체가 부고를 전했지만, 어떤 기사도 그의 육성을, 단 한 마디도 담지 못했다. 그가 말을 극도로 아꼈거나, 아무도 마이크를 건네지 않은 탓일 것이다. 거기서 셰르파 일반의 숙명같은 처지를 읽는 건 과도한 감상일까. guinnessworldrecords.com


앙 리타(Ang Rita)라는 네팔의 한 셰르파가 9월 21일 숨졌고, 세계 유수의 매체들이 그 소식을 전했다. 현역 시절에도 대단한 주목은 받지 못했고, 은퇴한 뒤론 잊히다시피 했던 '무명'이었다. 셰르파는 길잡이이지, 길의 주인공은 예나 지금이나 그들을 고용한 이들이다.

앙 리타는 만 28년간 셰르파로 일하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을 19번 등정했다. 세계기네스협회가 인정한 에베레스트 최다(10회) 무산소 등정과 최초ㆍ유일 동계 무산소 등정 기록이 그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마이크 앞에 초대받은 적이 없었거나,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잖은 부고와 유튜브 동영상 어디에도, 그의 육성은 한 마디도 없다.

알려진 바 그는 산에 오르지 않게 된 1996년 이래 세상을 뜰 때까지 딸에게 얹혀, 뇌와 폐ㆍ간 질환을 앓으면서 술을 벗삼아 살았다. 그를 염려한 이는 가족과 후배 셰르파 등 소수의 지인을 빼면 몇 없었고, 셰르파들 덕에 히말라야 입산료 등으로 재정을 채워온 네팔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런 사정들이 남은 이들의 마음을 더 뿌옇게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원심분리할 수 있다면, 슬픔과 안타까움 외에 부채감이나 죄의식, 막연한 분노가 추출될지 모르겠다. 그의 삶에 셰르파 일반의 숙명같은 삶이 어룽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셰르파, 셰르파하는 셰르파가 되다

셰르파(Sherpa)는 13~14세기 경 티베트 민족 그룹 중 종교 문화 생계 때문에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고원지대로 이주해 정착한 이들을 아울러 이르는 인류학적 고유명사다. 네팔 셰르파는 현재 약 15만여 명. 일거리를 찾아 미국 뉴욕 등 세계 도시를 떠도는 이들도 있다. 근년 셰르파는 고산 등반 가이드란 직업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너 우리 셰르파 해줄 수 있어?' 식의 동사로도 어의가 확장됐다.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하면서부터다. 등반가들이 밀려들면서 셰르파 다수는 셰르파하는 셰르파가 됐다.

힐러리는 노르가이를 들러리가 아닌 동료로서 존중하고, 성취의 절반을 나눠 가졌다. 그 온당한 미덕은 하지만, 엘리트 등반 경쟁시대가 만개하면서, 1980년대 말 상업 등반이 본격화하면서 점차 희미해졌다. 셰르파는 개인이 아닌 길잡이들의 집합명사로 점차 밀쳐졌다. 앙 리타는 만 20세이던 1968년 봄 셰르파가 됐다.

그는 1948년 7월 27일 솔루쿰부의 일라중(Yillajung)이란 작은 마을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10대에 고아가 됐다. 15세 무렵부터 감자나 소금 등 생필품을 지고 히말라야를 넘나드는 짐꾼으로 일을 시작했고, 이내 자질을 인정받아 세계 7봉 다울라기리(Dhaulagiri, 해발 8,167m) 등반대의 '포터(porter)'로 뽑혔다. 셰르파와 달리 고산 포터는 해발 5,000m급 베이스캠프까지만 짐을 나르는 이들이다. 그는 "등산화도 전문 장비도 없이" 7,000m 고도의 제3캠프까지 올랐다고 한다. 1982년 벨기에 팀 셰르파로서 8000m급으론 처음 다울라기리 정상까지 동행했고, 이듬해 미국팀 에베레스트 등정을 인도했다. 그는 동료 셰르파를 포함 8명이 숨진 96년 5월 에베레스트 참사 12일 뒤의 마지막 등반까지 에베레스트만 총 10번, 제3봉인 칸첸중가(Kangchenjunga, 8,586m) 1번, 초오유(Cho Oyu, 8,188m) 4번, 다울라기리 4번 등 만 15년간(82~96년) 8,000m급을 19번, 모두 무산소로 등정했다. 6번째 에베레스트 등정(1990년 4월)서부턴 거의 매년 스스로 자신의 최다 기록을 갱신했다. 물론 지금은 후배 셰르파 카마 리타(Kama Rita, 2019년 24회 유산소 등정)에게 최다 타이틀을 넘겼지만, 앙 리타의 무산소 기록은 지금도 독보적이다. 93년 8번째 등정 뒤 카트만두 언론은 그를 "설표범(snow leopard)처럼" 기민하게, "리듬에 맞춰 얼음 위를 춤추듯 나아가는" 셰르파라 썼다. 셰르파에게 설표범은 토템같은 존재다.

상업 등반대를 인도하는 셰르파는 고객의 짐을 나눠 지고, 앞질러 올라 캠프를 짓고, 밥을 지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서비스 업종인 셰르파는 그렇게 한철 일해서 3,000~5,000 달러를 번다. 고객들이 내는 돈의 약 1/20이다. 사다리를 지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셰르파. AP 연합뉴스


논란은 있지만, 앙 리타의 1987년 12월 에베레스트 4번째 등정은, 네팔 정부와 기네스협회가 공식 인정한 무산소 동계 초등이고, 지금도 유일한 기록이다. 당시 그가 동행한 한국 산악인 허영호는 산소 마스크를 썼다. 하산 도중 둘이 눈보라에 길을 잃어 텐트 안에서 유산소 체조로 체온을 유지했다는 일화가 있다. 논란은 그들이 정상에 오른 게 12월 22일 오후 3시20분이고, 동계 시즌이 시작된 건 당일 오전 4시 45분(동지)이었다는 데서 비롯됐다. 깐깐한 산악인들은 그들의 등반 대부분이 가을에 이뤄졌고, 정상 언저리에서 겨울을 맞이한 거라서 온전한 동계 등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산 등반대장은 전시 지휘관과 맞먹는 권한을 지닌다고 한다. 등반 일정이나 정상 공격조 선정 등에 셰르파가 개입할 여지는 그래서 크지 않고, 앙 리타의 저 모든 기록도- 시비도- 그의 기량과 의지를 온전히 보여줄 순 없다. 그리고 그는, 기록(경력)이나 명예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등반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서비스 업종

셰르파는 등반대 안에서 흔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는다. 상업등반의 경우 고객들의 짐까지 나눠 지고, 앞서 올라가 캠프를 짓고, 로프와 사다리를 설치하고, 차와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고산 등반은 거액의 입산료를 빼고도 1인당 최소 3,000만원은 든다는 비싼 레포츠다. 상업 등반대가 겪는 비극의 상당수는 에이전트의 평판과 관광객의 본전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에베레스트에서만 지금까지 약 300명이 숨졌고, 그중 약 1/3이 셰르파였다. 10만 명 당 사고로 숨진 이의 숫자로 환산한 직업군 위험도에서 2017년 기준 광부는 한해 평균 25명 숨졌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가장 위험한 직군으로 꼽은 어부는 124명이 숨졌다. 셰르파는 저 기준으로 환산하면 4,034명이 희생됐다. 그들은 이라크전 초기 4년 미군 사망률보다 3.5배 많은 비율로 숨졌다.

그렇게 일해 근년의 셰르파는 한 시즌에 약 3,000~5,000 달러(생명수당 포함)를 번다. 등반에 성공해 얼마간 보너스를 받을 때도 있다. 주로 서구인인 비현지인 가이드는 그들보다 10배 가량 더 벌고, 상업등반 고객이 지불하는 돈(6만~10만 달러)은 셰르파 임금의 약 20배다. 물론 네팔 1인당 국민소득(2018년 기준 1,034 달러)에 비춰, 한 시즌 두어 달 일해서 버는 것치곤 큰 돈이다. 드물테지만 등반가(관광객) 중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기 위해 셰르파의 '초인간'적 능력을 가축같은 '비인간'적 특질로 폄하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네팔인에게 셰르파는 부럽고 영예로운 직업이다. 셰르파들의 셰르파였던 앙 리타는 96년 등반 이후, 건강이 악화해 은퇴했다. 그를 염려한 당시 국왕 비렌드라(Birendra)가 왕자(Dipendra)를 보내 은퇴를 종용했다는 보도가 있다.

고도가 높아지면 기압이 떨어지고, 대기 산소 농도도 옅어진다. 대개의 평지인은 해발 2,500m 이상만 가도 고산증 증세를 경험한다. 폐가 받아들이는 산소가 부족해서 호흡이 가빠지고(과호흡), 인체 적혈구 형성인자(EPO)가 더 많은 적혈구와 헤모글로빈을 만들어낸다. 헤모글로빈이 많아지면 피가 끈적끈적해져 혈압을 올리고 혈관을 압박하고 심장을 혹사 시킨다. 피로 구토증 두통 현기증 불면증 이명 통증이 점차 심해지고, 그러다 폐와 심장에 부종이 생기고(고산폐부종, 고산뇌부종), 끝내는 근육이 굳고 의식이 사라지고 숨이 멎는다. 그게 고산병이고, 저산소증(hypoxia)이다. 임산부는 임신중독증으로 위태로워지고, 태아를 조산ㆍ사산하기 쉽다. 산소 농도가 평지의 1/3 미만으로 줄어드는 해발 8,000m 너머는 '죽음의 지대 Death Zone'라 불린다. 과장이 아니라 생리학적 진실이다. 거기선 세포들이 말 그대로 죽어간다. 무산소 등정이 그래서 더 어렵다.

겨울 등반은 또 다른 문제다. 날씨 변덕이 심해져 눈폭풍 예측이 더 어렵고, 눈사태와 붕락(崩落, 눈보라가 테라스처럼 쌓여 얼었다가 무게 때문에 붕괴하는 현상) 위험도 커진다. 당연히 더 춥다. 2016년 낭가파르밧을 동계 초등한 스페인 산악인 알렉스 티콘(Alex Txikon, 1981~)은 2017, 18년 에베레스트 동계 무산소 등정에 잇달아 실패한 뒤, 7,500m 지점서 후퇴해 텐트에서 만 하루 동안 양말을 벗지 못한 적이 있다고 블로그에 썼다. "발이 동상에 걸렸을까 봐, 쳐다보기 두려워서"였다. 티콘은 2019년 동계 무산소 등정을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은 K2에 도전했다가 다시 실패했다.

데니소반 슈퍼유전자의 전승자들

엘리트 등반가들을 기죽게 할 만한 셰르파의 고산 심폐 기능과 체력의 비밀을 캐기 위해 과학자들은 1976년부터 매달려왔다. 그 비밀이 최근에야 일부 밝혀졌다. 저산소증에 대처하기 위해 고산족들이 저마다 다른 변이유전자를 지녔고,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 탁월한 산소-에너지 대사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2012년 하버드대 연구팀은 남미 고산지대에서 1만년 이상 살아온 안데스인의 경우 평지인보다 헤모글로빈 양도 많지만 고산증을 일으킬 만큼 많지는 않고, 대신 단위혈액당 산소 운반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노년에 이르러 혈액 운반능력이 떨어지면 고산증을 겪기도 한다. 반면 셰르파 등 티벳인은 헤모글로빈을 늘리는 대신 단위 시간당 산소를 더 많이 흡입하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혈액 속 산화질소 비율을 늘려 혈관을 확장함으로써 피 순환을 순조롭게 했다. 하버드대 팀은 티벳인 다수가 헤모글로빈 생성 억제에 관여하는 단백질 'EPAS1'의 특별한 변이유전자를 지닌 사실도 확인했다. 이른바 '슈퍼유전자'였다. 한편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리학자 앤드루 머레이(Andrew Murray)팀은 2013년 셰르파와 평지인 등반가의 혈액과 근육 조직을 분석, 셰르파의 미토콘드리아(인체 배터리) 산소대사 효율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머레이는 평지인이 연료 소비가 많은 사륜구동 자동차라면, (그래서 많은 매연이 몸에 쌓여 힘겨워 진다면), 셰르파는 "탁월한 연비의 소형차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슈퍼유전자(EPAS1)의 원래 주인이 약 4만 년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신비의 고인류 '데니소바인'이란 사실도 근년에 밝혀졌다. 2010년 시베리아에서 처음 발견된 데니소바인 화석에서 셰르파들의 그것과 같은 변이유전자를 확인한 거였다. 하지만 저지대인 시베리아 데니소바인이 어떻게 고지대 셰르파에게 유전자를 전했는지를 규명해야 했다. 그러던 중 1980년 티벳 고원 해발 3,280m 지점서 발견된 16만 년 전 유골 화석이 단백질 분석결과 데니소바인의 턱뼈 화석이란 사실이 2019년 5월 확인됐다. 저널 '네이처'에 2019년 공저 논문을 발표한 막스플랑크 연구소 진화인류학자 장 자크 위블랭(Jean-Jacques Hublin)은 "그 누구도 고인류(데니소바인)가 그 극한의 환경에 적응해 살았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즉 셰르파는 데니소바인과 현생인류가 유전자를 섞었다(sex)는 고인류학적 증거이자, 그들의 슈퍼유전자를 갈고 닦고 나눠온, 데니소바인의 후예인 셈이었다.(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을 이어 '밀레니엄 시리즈' 4~6권을 쓴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는 셰르파의 슈퍼유전자를 모티브로 6권 '두 번 사는 소녀'를 썼다.)

병원 집중치료실 환자의 약 20%는- 어떤 병이든- 혈중 산소농도 저하(저산소증)로 숨이 멎는다. 회생하더라도 뇌손상 등 후유증을 겪기 쉽다. 스포츠과학계뿐 아니라 근년의 의과학계가 셰르파 연구에 혈안이 된 까닭이 그거다. 2000년대 중반 출범한 영국의 셰르파 특화연구소 'Xtreme Everest'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셰르파에게서 인류 생명 연장의 비전(秘傳)을 찾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생명벤처기업 'Variant Bio'사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동의 없이 셰르파 DNA 연구에 착수했다가 윤리적 논란에 휩싸여 있다.

앙 리타는 2017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최다 등정(10회)과 87년 동계무산소등정 기네스 기록 증서를 받았다. 은퇴한 지 만 21년이 지난 그 해, 병석의 그가 저 기록에 집착한 까닭은 알 길이 없다. 그에겐 '하늘의 여신' 사가르마타(Sagarmatha, 에베레스트의 네팔 이름)'의 사랑의 증표였을지 모른다. 트위터 @nepaltourismb


앙 리타는 아내 니마 초키(Nima Chokki)와 3남1녀를 두었다. 2012년 셰르파로 일하던 장남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고산증으로 잃었고, 이듬해 아내도 세상을 떴다. 현역 시절에도 산을 오르지 않을 땐 "주저 없는 주당(unashamed alcoholic)"이었다는 그의 알코올 의존 증세는 그 무렵 더 심해졌다고 한다. 99년 지병이 악화해 헬기로 카트만두의 병원으로 호송된 적이 있고,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뇌졸중을 겪었다. 간과 폐 질환도 앓았다고 한다. 돈을 모으는 습관이 없었는지 그는 늘 가난했다. 네팔산악협회가 그를 베이스캠프 매니저 등에 위촉해 매달 1만5,000루피(약 15만원)를 지급했지만, 지인들의 만류에도 아랑곳않고 대부분 술값으로 썼고, 치료비도 대부분 협회가 대왔다고 한다.

후배 셰르파 카미 리타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앙 리타는 분투했고 조국의 명예를 드높였지만, 네팔 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수많은 셰르파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팔 정부는 생전의 앙 리타에게 2개의 훈장을 주었고, 사후 국장(國葬)을 주선했다.

산을 떠난 뒤론 누가 또 어디를 '정복'했느니로 떠들썩한 세상마저 등지다시피 하며 살던 그가 2017년 4월 병상에서 지인에게 자기 기록의 기네스 등재 가능성을 물어본 연유는 알 길이 없다. 어쨌건 기네스협회는 곧장 은퇴 21년을 맞이한 그에게 2건의 기록 증명서를 발급했다. 유일하게 읽고 쓸 줄 아는 글자(자기 이름)를 거기서 찾아낸 앙 리타는 몰려든 카메라 앞에서, 역시 말없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외신은 지인들의 말을 인용, 은퇴 후의 그가 '행복으로 충만한 말년(happy life... to the fullest)을 보냈다'고 썼다. 나는 모르겠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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