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에선 '공정·윤리' 강조한 이상직…현실은 '내로남불'
알림

책에선 '공정·윤리' 강조한 이상직…현실은 '내로남불'

입력
2020.10.13 13:00
수정
2020.10.13 23:02
12면
0 0

일자리ㆍ상생ㆍ공정ㆍ윤리경영 등 강조
무능하고 욕망 채우기 바쁜 기업인 비판
현실 속 이 의원 모습은 책 내용과 거리?
추천사엔 관계 금융권 학계 언론계 인사
14일 이스타항공 정리해고 605명 단행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사태 논란의 중심에 선 이 의원은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연합뉴스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사태 논란의 중심에 선 이 의원은 지난달 24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연합뉴스


‘촌놈으로 태어나 맨주먹으로 중견 그룹을 일군 저자의 인생 스토리는 우리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영감을 받았으면 한다.‘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가 이상직 무소속 의원이 쓴 책 '촌놈, 하늘을 날다'에 남긴 추천사다. 추천사만 보면 이 의원은 모범적인 경영을 통해 사람들에게 큰 영감과 메시지를 줬어야 마땅하지만, 최근 드러난 그의 모습은 책의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이스타항공의 창업주 겸 실소유주로 지목된 이상직 의원이 쓴 3권의 책을 읽고 분석한 결과, 이 의원은 자신의 저서에서 무능하고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바쁜 기업인을 매섭게 비판했다. 상생과 공정의 가치를 여러 차례 언급했고, 기업의 일자리 창출도 강조했다.

이 의원은 2011년 12월 발간한 ‘촌놈, 하늘을 날다’라는 책에서 기업을 사적 소유물로 봐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 의원은 자신을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린 경영주라기보다 기업을 발전시킬 막중한 책무를 지닌 심부름꾼이라고 소개하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의원은 당시 이스타항공 대표였으며, 4개월 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그는 책에서 “오로지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바쁜 기업인도 있었다.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위해 기업 자금을 제멋대로 활용하는 기업인도 있었다. 결국 언젠가는 쌀독이 비게 마련이었다”며 기업인의 윤리의식을 유독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 속 이 의원은 회삿돈을 횡령해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원의 형이 횡령ㆍ배임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은 사건에서, 재판부는 횡령을 통한 대부분의 이익을 동생인 이상직 의원이 취득했다고 봤다. 박이삼 이스타항공 노조 위원장은 “기업 돈을 빼쓰고 그 죄를 피하기 위해 형을 대신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며 "책에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너무 뻔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직 의원이 2007년부터 써온 책들. 왼쪽부터 '촌놈, 하늘을 날다', '10배 성장전략 텐배거', '공정'. 채지선 기자

이상직 의원이 2007년부터 써온 책들. 왼쪽부터 '촌놈, 하늘을 날다', '10배 성장전략 텐배거', '공정'. 채지선 기자


2007년 5월에 낸 ‘10배 성장전략, 텐배거’에서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경영진을 비판했다. 이 책은 현대증권 펀드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2001년 제조업체인 KIC그룹 대표 등을 거친 이 의원이 이스타항공을 설립(2007년 말)하기 직전에 쓴 것이다. 이 의원은 “인수합병(M&A) 대상에 떠오르는 기업은 경영진이 무능하거나 도덕적 해이가 심해 기업 주가나 현재가치가 기업의 잠재가치 이하로 저평가된 경우가 보통”이라며 “도처에 무능한 경영진이 있는데, 이들은 능력이 없으면서 경영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은 욕심과 열정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도 책 내용의 비판 대상인데, 자기는 안 그런 것처럼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며 “해고를 철회하고 사재를 출연해 밀린 고용보험금을 납부, 직원들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조치는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보험금 납부가 회사의 최소한의 의무사항으로 여겨지는 만큼, 창업주가 해결의지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현재 이스타항공 대량해고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정작 책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여러 번 냈다. ‘촌놈 하늘을 날다’에서 이 의원은 “나는 누구보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고, 지난해 말 출간한 ‘공정’에서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기업에 대한 평가기준은 재무성과 평가에서 벗어나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저서 제목으로 '공정'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공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지우 참여연대 간사는 “이 의원이 편법적으로 자식들에게 이스타항공 주식 취득자금을 우회 지원했다는 의혹이 짙은 상황”이라며 “정부 여당이 이 의원을 탈당 조치하는데 그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현 정부의 공정 기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7월 이 의원에 대해 탈세가 의심된다며 국세청에 조사를 요구한 바 있다.

3권의 책을 통해선 이 의원의 화려한 인맥도 엿볼 수 있다. '촌놈, 하늘의 날다(2011)'에선 장하성 주중대사 외에도 미국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 출신 정치인이 추천사를 썼다. '10배 성장전략 텐배거(2007)'에선 전직 경제부총리, 서울대 경영대학장, 통신사 대표, 금융공기업 사장, 증권사 사장, 언론사 사장 등이 추천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스타항공이 예고했던 대규모 직원 정리해고는 14일 단행된다. 이번에 605명이 해고되면 이스타항공 직원은 590여명으로 줄어든다.

채지선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