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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姓)이, 가난이 싫었다"

입력
2020.10.1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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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랠프 로런 이야기

'폴로바이랄프 로렌'의 창업자겸 디자이너 랠프 로런은 놀림과 가난이 싫어 성(姓)을 바꿨다. ralphlauren.com

'폴로바이랄프 로렌'의 창업자겸 디자이너 랠프 로런은 놀림과 가난이 싫어 성(姓)을 바꿨다. ralphlauren.com


미국 패션 거물 랠프 로런(Ralph Lauren, 1939.10.14~)이 성(姓) '리프시츠(Lifshitz)'를 포기한 건 1955년, 만 16세 때였다. 2002년 인터뷰에서 그는 "성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놀림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소문처럼 유대 혈통을 감추려던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shits(똥)'는 푸념이냐 욕설에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는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도피하고 싶었던 것은 혈통이 아니라 가난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사촌이 그 무렵 성을 '로런스(Lawrence)'로 바꾸는 걸 보고 나도 결심했다. 하지만 똑같이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고른 게 '로런(Lauren)'이었다. 2년 뒤 고교 졸업 앨범에 그는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고 썼다. 그의 평전에서 작가 마이클 그로스(Michael Gross)는, 유년기 로런이 영화나 소설, 특히 게리 쿠퍼나 케리 그랜트의 영화 속 판타지로 '도피'하곤 했다고 썼다. 그를 매료시킨 건 연기나 서사보다 배우들의 패션이었다. 종이 인형에 옷을 갈아 입히듯 그는 배우들의 옷 디자인과 색상을 상상을 통해 바꿔보곤 했다.

뉴욕시립대를 중퇴하고 '브룩스 브러더스' 매장 판매사원이 돼 경영을 익혔고, 넥타이 업체 '보 브러멜(Beu Brummell)' 등에서 가공 실무를 경험한 뒤 1967년 5만달러 은행 대출을 받아 '폴로(Polo)'란 상표의 타이를 출시, 이듬해 50만달러 매출을 올렸다. '폴로'란 이름도 우연히 본 폴로 경기장의 극소수 상류층 패션 디테일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리프시츠'의 반대편 극단, 유년의 판타지가 거기 있었다. 컬러TV가 막 도입되던 때였다. 무채색 일변도 넥타이에 화려한 색을 도입한 게 폴로였고, 라코스테의 원조 피케셔츠에 20여 가지 다채로운 색을 입힌 게 그였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 토론회 때마다 입은 폴로 바지 정장은 꿈의 성취의 한 상징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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