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파서" "열 나서"...국감 불출석 사유도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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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아파서" "열 나서"...국감 불출석 사유도 '가지가지'

입력
2020.10.10 19:00
수정
2020.10.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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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이유였던 '해외출장'…입·출국 제한에 자취 감춰
"몸이 아파서" 늘어…해외 거주자는 '자가격리' 사유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7일 오후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뉴스1

"해외 출장이 예정돼 있어서…"

"건강이 좋지 않아서…"

국정감사가 7일 시작됐습니다. 행정부 소속 기관들이 주요 피감기관이지만, 기타 국회가 '필요하다'고 의결한 이들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를 수 있죠. 때문에 국감 때마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을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무더기로 불러 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그 동안 기업인들이 국감 출석을 피하며 내세운 주된 사유 1위는 '해외출장'이었습니다. 국회사무처 의사국이 낸 국정감사·조사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2009년~2018년 10년 동안 피감기관이 아닌 일반 증인 2,879명 중 468명(중복·대리출석 포함)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는데요. 사유 중 '해외출장'이 30%, '건강상 이유'는 20% 가량을 차지했죠.

최근 이 같은 국감 증인들의 불출석 사유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오늘은 기업인들의 국감 불출석 사유의 역사와 트렌드를 살펴보려 합니다.

코로나19 이전 기업인 불출석 사유 '해외출장' 30%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9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 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답변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기업 총수의 경우 좀처럼 국감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요. 2015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기업 총수 중 처음 정무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했어요. 롯데그룹의 특혜와 상장차익 사회 환원 여부 관련 질의를 위해 출석해 달라는 요구에 답한 것인데요. 기업 입장에서 민감한 주제임에도 직접 국정 감사장에 나오면서 화제가 됐죠.

같은 해 당시 박영식 대우건설 대표이사는 건설계 부조리와 관련해 국토교통위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했습니다. 국내 1위 사모펀드 회사인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또한 홈플러스 직원 고용 문제 등을 묻기 위한 산업통상자원위 국감에 해외 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나오지 않았어요.

김범석 쿠팡 대표이사는 산업통상자원위에 온라인 전자상거래 공정성 관련 증인으로 불렸지만 건강상 문제를 들어 불출석했고요. 쿠팡 관계자는 당시 "김 대표가 농구를 하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해 국감장에 나갈 수 없다"고 해명했는데요. 같은 이유로 함께 증인에 채택되었던 박은상 위메프 대표,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 등은 현장에 나갔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 20대 국회 첫 국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어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서 플랫폼 독점·지배력 남용 관련 질의를 위해 증인으로 부른 임지현 구글코리아 정책총괄, 보건복지위에서 석유화학 산업시설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국민건강 문제를 물으려 증인으로 부른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산자위에서 사드 배치 관련 업계 타격을 묻기 위해 참고인으로 부른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또한 모두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이유는 하나 같이 해외 출장이었습니다.

2017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서는 단말기 완전자급제와 관련해 증인으로 당시 황창규 KT 대표이사, 권영수 LG유플러스 대표이사,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 등을 불렀습니다. 아울러 온라인 및 포털 생태계 현안을 묻기 위해 조용범 페이스북 코리아 대표, 존리 구글코리아 대표,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불렀죠.

물론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이유는요. 해외 출장!

과방위 '무더기 불출석' 잔혹사…"나라 경제 때문에 출장 중인데"

이원욱 과방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의를 선언하고 있다. 뉴스1

과방위 국감 불출석이 유행이라도 된 것일까요. 2018년에도 무더기 증인 불출석의 역사는 반복되는데요. 당시 이해진 네이버 GIO, 박정호 SKT 대표이사, 하현회 LG유플러스 대표이사, 고동진 삼성전자 대표이사, 서수길 아프리카TV 대표이사 등 증인들이 또 다시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습니다. 과방위는 불출석과 관련해 이들에 대해 줄줄이 고발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현재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 국정감사·조사에 불출석한 증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3,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죠. 여러 차례 벌금을 물다보니 학습 효과가 생긴 것일까요. 2018년에도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과방위 증인들은 해외 출장 명목으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지만, 일부는 통보 날짜가 아닌 나중에 열린 종합 국감에라도 참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위부터 2017년, 2018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불출석한 일부 기업인 일반 증인들의 불출석 사유. 해외출장이 상당수다. 국회사무처 의사국 '국정감사·조사 통계자료집' 발췌

이 외에도 같은 해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부당노동 행위 등에 대한 질의 때문에 산자위에 증인으로 불렸지만 베트남 현지 투자 관련 협의를 위한 해외 출장을 사유로 두차례 불출석 사유서를 냈고요. 문화체육관광위에서는 민경환 구글 한국 총괄상무를 시장지배력 남용 관련 질의를 위해 소환했지만 역시 해외 출장 중이었죠.

지난해까지도 해외출장 사유가 일반적이었는데요.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회장은 2016년에 이어 2019년 정무위의 공정위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질의를 위해서였죠. 하지만 사업차 미국·중국에 출장 중이라며 또 다시 불출석합니다. '혐한방송' 논란이 있었던 일본 화장품기업 DHC의 김무전 한국법인 대표도 증인으로 불렸지만 일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고요.

같은 해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의 경우 여수국가산업단지 석유화학업체 대기 오염물질 측정치 조작과 관련해 산자위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는데요. 그 또한 해외 출장을 이유로 국감장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용주 전 무소속 의원은 '허 대표가 사무실로 찾아와 참석이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고 공개, 심지어 직접 허 대표 불출석에 대한 해명에 나서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기도 했죠.

코로나19로 '해외출장' 어려워…외국에 있으면 "자가격리 때문에"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8일 오후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인천공항공사 구본환 전 사장이 불출석해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이번 국감에는 증인으로 대기업 총수들을 많이 채택하지는 않았는데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출국이 어려워 지면서 단골 이유였던 해외 출장을 꺼내기는 어렵게 됐죠. 대신 건강상 이유를 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이라도 나타나면 국회도 계속 출석을 요구할 수는 없는 민감한 상황이기도 하죠.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2013년 손영철 당시 사장을 대리출석 시킨데 이어 7년만에 국회 정무위 국감에 가맹본부 불공정 거래행위 관련 증인으로 불렸지만 또 불출석 의사를 전했는데요. 사유는 '고열 및 전신 근육통'입니다. 헌데 그 소견서를 '정형외과'에서 받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죠. 야당 의원들은 이를 비판하며 출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구본환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도 최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논란과 관련해 환경노동위에 일반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눈이 아프다'는 이유로 8일 나오지 않았아요.

코로나19로 나타나는 또 다른 불출석 사유도 눈에 띕니다. 이번에도 과방위인데요. 주요 외국계 IT 기업 CEO들에게 나와달라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퇴짜를 맞은 겁니다.

과방위는 '인(in) 앱결제 강제' 관련 낸시 메이블 워커 구글코리아 대표를, '넷플릭스법' 관련 레지날드 숀 톰슨 넷플릭스서비시스 코리아 대표를 불렀지만 둘 다 "미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 입국하면 자가 격리 등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참석하기가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때문에 7일 과방위 국감은 일반 증인은 한 명도 없이 진행됐죠.

이와 관련해 외국계 기업이 해외 거주자를 한국 대표로 내세우는 수법으로 출석을 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증인으로 채택된 대표들이 나오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임원들이 대리 출석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죠. 다만 대신 나오는 경우 '잘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이런 까닭에 증인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내용이 없는 '맹탕국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고, 그러자 국회에서는 해외에서 원격으로 출석하도록 하는 '언택트 화상 국감'도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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