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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여성의 임신 유지 여부까지 단죄하나

입력
2020.10.0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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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모두의 페미니즘’ 회원들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낙태(임신중단)'를 조건부로 허용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7일 입법 예고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는데도 존속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의 형법 개정안은 낙태 처벌 규정을 현행대로 유지하되, 임신 14주 이내엔 낙태를 허용하기로 했다. 24주 이내엔 성폭력, 건강상의 이유를 비롯한 사회ㆍ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 있는 낙태 허용 요건을 확대해 형법에 옮긴 형식이다.

벌써부터 ‘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낙태 처벌 조항을 그대로 둬 ‘낙태는 범죄’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고착시켜서다. 임신 15주 이상 24주 이내에 낙태를 할 때도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상담과 24시간의 숙려기간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 선택의 자유를 좁혔다. 의사의 낙태 거부권을 신설한 것 역시 마찬가지 효과다.

지난해 헌재는 “여성의 임신 유지 여부는 인생관과 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거친 전인적 결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국가가 과도하게 침해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정부 개정안은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했는지가 의문이다. 사람마다 신체 조건과 처한 상황이 달라 임신 주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현실도 무시했다. 그렇기에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낙태죄의 전면 폐지를 권고하며 일정한 임신 주수를 정해 처벌 여부를 달리 판단하는 건 형사처벌 기준의 명확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임신 중단 여부에 국가가 이런 저런 조건을 붙여 단죄하려는 건 전근대적 발상이다. 사문화된 낙태죄를 존치해 임신 중단 여성들에게 범죄자 굴레를 씌워야겠나. 다행히 여당에선 정부안은 퇴행적이라며 임신중단권을 전면 보장하는 개정안 발의 움직임이 있다. 대의기관인 국회가 여성들의 지적을 충분히 반영해 심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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