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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 규모 보다 효과를 따져보자

입력
2020.10.06 18:00
수정
2020.10.06 18: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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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재정 핵심은 지출 합리성과 효과성
정부정책 평가할 양질적 증거 부족
과학적 객관적 근거 기초로 지출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 지출이 크게 늘면서 재정 건전성을 둘러싼 논쟁이 점화되고 있다. 작년 37.1%였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네 차례에 걸친 추경의 영향으로 43.9%까지 높아졌고, 2024년에는 58.6%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엄격하게 관리하여 국가 채무의 급증을 막고 저출산ㆍ고령화로 인한 장래의 재정 여건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반면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지켜내고 성장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재정 운용이 필수적이며,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완화를 위해서도 사회적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지금 잘 쓰는 돈은 국민의 삶의 질과 전망을 바꾸고 미래의 세수를 늘리며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재정 건전성 자체가 절대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부 지출을 늘린다고 해서 당면한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확장 재정의 타당성에 관한 핵심적인 쟁점은 나랏돈을 얼마나 잘 써서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재정의 규모에 대한 높은 관심과 비교할 때 지출의 합리성과 효과성에 관한 정보나 논의는 매우 부족해 보인다.

물론 정부 부처를 포함한 여러 기관에서 매년 재정 지출의 적절성과 효과성을 평가하여 재정 운용 개선에 반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현재의 재정 지출 평가 시스템에는 개선의 여지가 적지 않다고 판단된다. 우선 정부 정책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실증적인 증거가 양적ㆍ질적으로 크게 부족하다. 지금처럼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과학적인 논의의 기회가 적은 여건에서는 이념적ㆍ정치적 주장과 이해집단 간 힘겨루기가 정부 지출의 규모와 배분을 좌우할 우려가 있다. 재정 지출 사업의 효과성을 평가하는 연구가 다수의 독립적인 연구자들에 의해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진행된 후 학계의 투명한 논의와 검증을 거치게 된다면 이 문제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들을 제대로 평가하는데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운 여건은 더 근본적인 제약이다. 예컨대 최근 지급된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수혜자들에게 미친 효과를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지출 데이터와 각 가구의 특성을 보여 주는 행정 데이터를 가구별로 결합한 자료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지원이 가구원들의 후생에 미친 장기적인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해당 가구들의 표본을 추적ㆍ조사한 데이터가 요구된다. 노력과 비용이 소요되겠지만 이러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은 가능하며, 수십조에 달하는 정부 지출이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를 위해 세금을 더 걷고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이 정당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개인과 가구에 관한 다양한 행정 자료를 결합하여 분석함으로써 다양한 정부 정책의 미시적ㆍ장기적 효과를 밝히는 연구결과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통계청,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세청 등 여러 정부 기관에서 데이터 센터를 설립하여 마이크로 행정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변화의 방향은 긍정적이다. 앞으로 기관 간의 협조를 통해 다양한 행정 자료를 연결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자료 공개의 범위와 접근성을 확대한다면 정책 연구의 질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재정 지출 확대는 결국 현재와 미래의 납세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결정이다. 과학적ㆍ객관적 근거에 기초하여 합리적인 지출 방안을 결정하고, 추후 그 효과에 대한 엄밀한 평가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책무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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