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달은 한국의 일주일... '빨리빨리'는 '느림'보다 나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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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달은 한국의 일주일... '빨리빨리'는 '느림'보다 나은가

입력
2020.09.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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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빨리빨리’ 정신 VS 일본의 지나친 완벽주의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현지 대학에 재직 중인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과 일본의 지나친 완벽주의는 모두 장단점이 있다. 빠른 것을 강조하는 한국은 일본 시계가 느리다고 탓하기 전에 한국의 시계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일 양국에서 경험하는 논문쓰기, 마감 시계가 다르다

정신 없던 9월이 끝나간다. 새 학기의 시작과 맞물리기도 했지만 원고의 마감이 겹쳐 전쟁 같은 한 달이었다. 매일이 전투라는 회사나 가게 일과 비교하자면, 논문이나 책을 쓰는 일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거북이처럼 느린 프로젝트다. 오랜 시간 조사하고, 생각하고, 글로 쓰고, 수정을 되풀이하는 연구자의 마감은 다른 의미에서 격렬하고 고통스럽다. 몰려드는 마감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연구자의 시계는 바깥 세상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일본에 양다리를 걸친 연구자이다 보니, 마감에 있어서도 두 나라의 전혀 다른 시간 감각을 실감하곤 한다.

이번에 마감한 원고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학술 저널의 특집호에 투고한 논문이다. 몇몇 인류학자 동료로부터 ‘아시아의 소비 문화’에 대한 특집을 함께 꾸려 보자는 제안을 받은 게 4년 전인데, 그 때는 2020년 출간을 목표로 도전해 보자는 말이 까마득했다. 1년에 두 번씩 모여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연구회를 갖고 격려를 건네고 충고도 주고받았다. 초고를 마감한 것은 1년 반 전인데, 이후 ‘피어 리뷰’ (Peer Reviewㆍ학술적인 저작물에 대해 익명의 동료 연구자가 심사하는 과정)를 거쳐 수정 원고를 제출했다. 다행히 심사가 순조로워서 한번만 더 교정을 보면 연말쯤에는 저널 특집호에 논문이 한 편 실리겠다. 4년 동안 ‘아시아의 소비 문화’도 변했을 테지만, 최신 동향에 대한 분석을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읽어도 의미가 있을 충실한 특집이 되었고, 동료와 머리를 맞대고 꼼꼼하게 검토하는 과정에서 배운 점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학술 저널의 특집을 꾸리는 일의 순서는 다르지 않다. 동일한 주제로 의기투합한 연구자들이 연구회에서 성과를 공유하고, 원고를 쓰고, 심사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비교가 안 되게 빠르다. 한국의 학술 저널 특집호에 논문을 투고한 적이 있다. 내용상으로 제법 무게감 있는 이론적 주제였는데, 첫 연구회에서 온라인 발행까지 반 년도 걸리지 않았다. ‘피어 리뷰’ 결과가 이메일로 도착했을 때에는 말 그래도 ‘멘붕’ 이었다. 일본에서라면 적어도 한 달은 주어졌을 원고 수정 기간이 불과 일주일도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밤잠을 줄여서 마감 내에 원고를 제출하기는 했지만, 시간에 쫓기며 수정한 원고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최신 연구 과제가 언급된 흥미로운 특집호가 나왔다. 원고를 매만질 시간 여유가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속도감 있게 연구하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료의 충고를 곱씹고 생각을 다시 정리하며 타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작업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과정에는 아쉬움이 많다.

논문의 마감 시계만 다른 것이 아니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에서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곳에 살던 2년 동안 완공된 모습을 못 봤다. 지하철 역 보수 공사도 한번 시작하면 세월아 네월아 일 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 논문 마감도 느릿느릿, 공사도 느릿느릿, 한국과 비교하자면 일본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

◇다 같은 ‘느림’이 아니다

더운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성격이 대체로 느긋하다.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하고 일을 처리하는 손놀림도 굼뜨다. 날씨가 덥다 보니 부지런히 움직이면 금방 지치고 서로 부딪히기도 쉽다. 이런 사회에서의 ‘느림’은 더불어 살기 위한 미덕이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사적인 삶을 즐기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사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근면하게 일하는 개미의 삶은 무의미하다는 가치관이 팽배하다. 사회는 천천히 돌아가고 발전이 느리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평화롭다. 이런 사회에서의 ‘느림’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감내하는 불편함이다. 느리다고 다 같은 ‘느림’이 아닌 것이다.

일본 사회의 ‘느림’은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하려는 완벽주의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우선 시계를 멈추고 본다. 꼼꼼하게 경우의 수를 분석하고 앞으로 닥칠 낯선 상황에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일단 일이 시작되면 시계가 천천히 돌아가기는 하는데, 스피드보다는 디테일이 중요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좋게 말하면 철저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유연성이 없다.

도쿄에 예약잡기가 하늘에 별따기 처럼 유명한 초밥집이 있다. 고급 초밥집과 비교하면 저렴한 가격에도 훌륭한 초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에 인기 폭발인데 좌석이 딱 세 개 뿐이란다. 인터넷에 떠도는 최신 소문을 따르면 요즘에는 8년 뒤 예약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 같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8년 뒤라니! 손님이 많으면 매장을 넓힐 만도 하고 매출을 올릴 궁리도 할 만한데, 주인장은 ‘단 세 명의 손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초심을 꺾지 않는다. 스피드와 근면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느리다고 하면 게으름이나 비효율 등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일본의 ‘느림’은 다른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초밥 장인의 옹고집은 게으름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근면함에서 비롯된 ‘느림’인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일본의 지나친 완벽주의

새로운 일이라면 일단 시작하고 보고, 한번 시작한 일이라면 서둘러 끝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회의 정서를 ‘빨리빨리 문화’ 라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스피드가 남다르다. 다른 나라에서는 족히 1시간은 걸리는 입국 수속이 15분만에 끝나고, 붐비는 도로 위를 자동차는 곡예하듯 질주한다. 주문하면 30분 내로 따끈한 음식이 배달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아침에 주문한 상품을 저녁에 집 앞에 갖다 놓는다. 마치 ‘빨리빨리’가 급변하는 세상의 성공 비결이 된 듯, 철저함을 추구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일본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일이 합작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개발자가 전해 준 이야기에 따르면, 한일간 일을 대하는 시간 감각의 차이가 종종 갈등의 요소가 된다고 한다. 업무에 차질이 생겨서 기획, 마케팅 부서와 협업을 약속했던 일정에 서비스 개발을 완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의 개발자들은 입을 모아 ‘불완전해도 일단 서비스를 시작한 뒤 하나씩 고쳐 나가자’ 라고 주장했는데, 일본의 개발자들은 ‘다른 부서에 폐가 되더라도 서비스오픈은 미루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독자라면 어느 쪽 손을 들어주겠는가. 불완전해도 서비스를 시작하자는 한국인 개발자의 주장은, 업무에 대한 진취적 태도와 순발력은 훌륭하지만 흠이 있는 서비스를 쓰게 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무책임하다. 반면,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오픈을 미루자는 일본인 개발자의 주장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철저함은 칭찬받을 만 해도 업무상 발생하는 비효율이 만만치 않다. 결국 이게 좋다 저게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과 디테일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과 일본의 지나친 완벽주의, 양쪽 다 장단점이 있다. 다만, 팔이 안으로 굽다 보니 아무래도 ‘빨리빨리’ 문화의 부정적 결과를 고스란히 안고 사는 한국 사회에 쓴 소리를 하게 된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 복원 공사가 2년만에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일본의 지인이 ‘20년이 걸렸다고 해도 납득할 만한 규모의 공사가 2년에 끝났다니 놀랍다’고 혀를 내둘렀다. 놀라운 속도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공사 중에 발견된 귀중한 문화재는 훼손되었다 하고 조경 공사는 날림이어서 산책하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실 한국 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가 ‘빨리빨리’를 추구하다가 ‘대충대충’을 정당화하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일본의 시계가 느리다고 하기 전에 한국의 시계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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