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의 질문] 최영애 인권위원장
요즘 억울한 일, 의지할 곳 없는 일이 흘러가는 종착역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와 국가인권위원회인 듯하다. 인권위가 호명되는 빈도는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와 맞물려 있다. 인권 의식은 날로 달라지는데, 변화에 대한 저항은 만만치 않고, 심판해 줄 기관은 믿음직스럽지 않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 직권조사, 차별금지법 입법 추진, 스포츠계 폭력 문화 개선 등 쉽지 않은 과제를 떠안고 있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났다.
"차별금지법 이번에도 못 만들면 나라 망신"
-인권위가 6월 30일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을 내고 국회에 입법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가 처음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던 게 2006년이다. 당시 최 위원장은 인권위 상임위원이었다. 14년 간 실패한, 2020년 다시 시도하는 차별금지법 입법의 의미는 무엇인가.
“2006년엔 정부입법이었다. 법무부가 성적 지향 빼고, 뭐 빼고, 그렇게 국회에 가져갔다. 그조차 무산됐다. 사회적으로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본다. 차별이 뭔지 몰랐고, 차별하면 무조건 처벌하는 건가 여겼고, 이 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무르익지 않았다. 지금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여러 차원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 각인되었다. 이번엔 국회에 법을 만들어 주십사 하고 던졌다. 정의당이 중심이 돼 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 의원들도 무릎을 꿇으며 차별 반대 퍼포먼스까지 했다. 이번에는 꼭 법이 제정되게 하려 한다. 때가 이르렀다.”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이번에도 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창피한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과 우리나라만 없다. 1960년대부터 입법을 시작해, 대체로 80~90년대에 만들었다. 영국 독일 등은 개별 차별금지법이 있던 것을 통합시켰다. 유엔은 2015년부터 매해 인종차별철폐위, 여성차별철폐위, 인권이사회 등을 통해 한국에 법 제정을 권고했다. 차별금지법 유무는 그 나라 인권의 척도다.”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가 6번이나 좌절된 데에는 근본주의 개신교계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국회가 그 표를 의식해 통과가 힘들다.
“법이 만들어져도 교회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가 죄이니 처단하자고 선동하고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안 된다. 외국에서도 처벌한다. 7대 종단을 다 만났는데 개신교 빼고는 모두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 유림도, 천도교도 찬성인데, 개신교만 반대다. 나도 개신교다. 그러나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으로 무너진다면 그게 종교인가. 때로 정말 종교적 이유로 이러는가 의심스럽다. 레위기에 동성애는 죄라는 언급이 있지만, 그것 말고도 여러 죄가 있다. 성경대로라면 피가 들어간 걸 먹지 말라 했으니 순대도 먹으면 안 되고, 일요일에는 차를 타도 안 되고 돈도 쓰면 안 된다. 다른 건 싹 빼고 동성애만 죄라는 게 맞나. 국회에서 ‘인권위원장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말도 들었다. 코미디다. 제가 종교계 어른들에게 법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고 그 후 국회에서 종교계 간담회를 열려고 한다. 진척이 없지는 않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찾아가겠다. 여기에 여야가 어디 있나. 법 앞의 평등은 헌법의 핵심 아닌가.”
성적 지향 삭제한 차별금지법은 후퇴
-국민의힘은 성적 지향 언급을 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그건 후퇴다. 혐오·차별 반대 범정부 선언을 논의하기 위해 사회관계장관회의에 갔을 때 ‘성적 지향이 꼭 포함돼야 하나, 인권위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성적 지향은 인권위법에도 이미 들어있고 차별의 대표적인 항목이기 때문에 이것을 빼고 차별금지법을 만들 거면 하지도 말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인정받기 어렵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그건 마지노선이다.”
-차별엔 반대한다면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권리,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반대하는 논리가 있다.
“법에 대한 오해를 부풀리고 있다. 인권위가 법 이름에 평등을 넣은 게 그 때문이다. 이 법이 지향하는 것은 평등이지 처벌이 아니다. 장애인이 문턱이 높아서 못 가는 시설을 고쳐 고궁이든 전시장이든 다닐 수 있게 되면 노약자도 편하게 이용하는 것 아닌가. 지하철역에 장애인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드니까 노인도 타고 임신부도 타고 필요한 모두에게 편의를 주지 않나. 외국인이 내 일자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 법이 허용하지 않는 것까지 내줘야 하냐, 이런 생각은 오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차별이 심하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바로 이 방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당하지 않은 차별을 한국에서 경험했다’고 말했다. 일본계여서일 것이다. 서구 사람, 백인과 달리 아시아인, 흑인 차별은 심하다. 영어강사 채용 때 미국인이어도 흑인이면 강사료가 낮다고 한다. 70년대에 내가 미국에 갈 때 남편을 보호자로 기재해야 했는데 지금도 방송사가 여자 아나운서는 계약직, 남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여 검사들도 초임 때 성희롱 발언을 듣거나 슬쩍 추행을 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말한다. 이런 나라가 우리나라다.”
"우 조교 소송 함께 했던 한 팀, 그러나 딛고 가야"
-고 박원순 시장 사건에 대한 인권위 직권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의 주안점과 의미는 무엇인가.
“1993년에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우 조교 사건) 때 박 전 시장과 나는 한 팀이었다. 내가 공동대책위원장, 박 전 시장은 주 변호사였다. 성희롱이라는 용어를 처음 쓰니까 온 나라가 희화화하던 때였다. 1심에서 3,000만원 배상 판결이 나자 난리가 났다. 2심 판사는 수인한도(受忍限度)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다. 수인한도란 건물 지을 때 주변 일조권을 침해하면 어느 선까지 참아야 하는지를 따지는 용어인데,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 이 정도 친밀감의 표현은 참아야 된다는 개념으로 주장한 것이다. 패소했다. 법조 기자들이 참 좋은 논리라고, 유능한 판사라고 했다. 피해자는 온갖 비난에 시달리고, 더한 성희롱을 당한 전임 조교들은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너무 힘들면 3심은 관두자고 했는데 피해자가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그랬기에 역사적 판결이 나왔다. 5년을 끌어 대법원이 파기환송했고 500만원 배상 판결이 확정됐다.
왜 이 사건을 말하느냐. 그 당시 성희롱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문화가 있었던 것처럼,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런 일이 나오게 하는 문화가 있다. 여성들이 아니라 이 사회가 (성범죄·성차별에 대한) 수인한도를 갖고 있다. 인권 감수성이 그렇게 뛰어난 박 전 시장조차 자기 행동이 문제가 되지 않는 수인한도 내에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조직의 문화가 있다. 성추행을 당해도 피해자가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의 호소를 눈여겨보지 않는 사회다.
이런 문화를 깨뜨려야 한다. 피해자 호소를 바라보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박 전 시장과 각별했지만, 그를 딛고 가겠다. 그가 처음에 달성하고자 했던 것, 그러나 끝내 문화까지는 바꾸지 못한 것을, 그렇게 해내겠다. 박 전 시장과 친한 사람들 앞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박원순을 딛고 가야 한다고.”
-개인적 인연이 있었던 만큼 충격이 컸겠다.
“박 전 시장과 오래 일을 해 왔던 사람들의 충격은 말도 못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은 그냥 사건이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도 어떤 사건이다. 그러나 박원순 사건은 우리의 삶 전체가 도전을 받는 것이었다.”
박 시장조차 못 벗어난 성폭력 용인 문화
-권한은 막강한데 감시가 없는 지자체장의 지위도 문제 아닐까.
“권력자라는 문제가 물론 있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비위라면 문제 삼을 사람도 있었을 텐데 성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굉장히 관대하고 수인한도가 높다. 돈이나 권익이 걸린 비위는 제보라도 하지만 성비위는 치외법권에 가깝다. 조직의 장이 갖는 막대한 권한과 맞물려 피해 호소가 들리지 않았다. 서울시의 시스템이 있어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 전 시장 사건만 아니라 안 전 지사, 오 전 시장 사건을 인권위가 봐야 한다. 사실 그 전부터 세 지자체를 직권조사하려 했다. 일단 서울시를 조사하고 나머지 두 곳을 조사할 생각이 있다. 세 사건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피해자의 호소를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한테 네가 이해하라는 식으로 묵살했다. 아주 유사하다. 이게 한 개인, 서울시만의 문제일까. 아닐 것이다. 세 곳을 보고 나면 적어도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 생각한다.”
-성범죄를 문제로 보지 않고 감싸주는 문화라면, 특히 연대와 단일성을 강조하는 조직이라면 인권위 조사로 밝힐 수 있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쉽지 않다. 조사할수록 대상이 늘고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다. 말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해석이 가능하다. 경찰, 검찰처럼 방조범을 밝히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전모를 읽어낼 수 있다. 수사 진행과 상관 없다. 박 전 시장이 없어도 상관 없다. 처벌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파헤치고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게 인권위가 할 일이다. 객관적인 제도 자문도 받고 있다. 늦어도 12월까지는 조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문제는 그 후 사람들이 안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그게 뭐라고 문제삼냐’는 식인데, ‘뭐라고’가 아니라는 걸 이해시켜야 한다.”
-조문 논란 등 사건에 대한 반응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리 바뀌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한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이 사건이 말하고 있다.”
최숙현 선수 대응 "인권위도 안이했다"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사망으로 스포츠계의 학대와 폭행이 얼마나 근절되기 어려운지 드러났다. 심석희 선수의 충격적인 폭로 이후 지난해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위가 대규모 실태 조사를 하고, 스포츠혁신위가 7차례 제도개선 권고안도 내놓았었다. 대한체육회 등 기득권 세력이 거세게 반발하니 인권위 권고가 무슨 소용인가.
“인권위가 2년을 매달려 내린 결론은 스포츠계의 메달 중심 프레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국위 선양 수단이 아닌 즐기는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 OECD 회원국이고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인 나라가 스포츠에 그렇게 집착할 이유가 없다. 물론 대한체육계의 기득권, 징계권 등 문제가 복잡해 누구도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책임지고 구조를 변혁하도록 지난 7월 권고한 것이다. 5년쯤 걸릴 생각을 하고, 대통령이 부처를 움직이고 대한체육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가시권에 든 인권침해 문제 외에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운동을 하다 탈락한 이들이다. 진학하면서 선수 선발이 안 되면 운동으론 미래가 없고 공부를 안 해 선택지가 별로 없다. 꿈을 잃고 망가지기 십상이다. 탈락한 무수한 꿈나무들의 삶이 망가지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 권고를 왜 그렇게 늦게 했나. 지난해 12월 인권위 전원위에 이 안건이 올라왔었는데 재의결을 거치느라 권고까지 6개월 넘게 걸렸다.
“재의결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안건 중 앞 순서 논의가 길어져 이 안건을 처리하지 못했다. 그래서 재상정했다. 코로나19로 회의를 못해 시간이 걸렸다. 또 원래 안건은 대통령 권고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권고하기로 하니 권고문을 다듬고 근거를 정리하는 데에 또 시간이 걸렸다. 권고문 발표 시기를 좀 본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시국에 대통령에게 스포츠계를 확 뒤집으라는 권고를 내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했다. 권고가 먹혀야 하지 않나.”
-공교롭게도 그 사이 최 선수가 사망했다. 최 선수가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지만 사망을 막지 못했다. 스포츠인권특별조사위가 대규모 실태조사를 하고도 경찰 수사로 넘기지 않은 데 대한 비판도 있다. 인권위조차 너무 안이한 것 아닌가.
“비판에 동의한다. 내부적으로 인권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했다. 해당 부서는 서운할 수 있지만, 그런 호소를 들었다면 뛰어가야 했다. 물론 담당자가 일을 안 한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내부 지침에 따라 보통 3개월이 걸린다고 말한 것이 피해자에겐 얼마나 서운하게 들렸을까. 그럼 경찰에 가야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무슨 비판을 해도 할 말이 없다. 우리가 감수성을 더 길러야 한다.”
-몇 년 전까지 의식도 못했던 일이 쟁점이 되고 갈등을 겪는 시대다. 어떻게 인권 감수성을 유지해야 하나.
“외국에서 수업을 들을 때 교수가 학생들 그룹을 지어주는데 흑인이 다수인 곳에 백인 한 명, 동양인이 다수인 곳에 흑인 한 명이 들어가도록 했다. 그룹별 토론 후 백인 학생이 ‘흑인들 사이에 혼자 앉아 있는 경험이 처음이었다’며 ‘내 말이 공격받지 않을까 두려움과 위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때 느낀 게 많다. 소수는 늘 느끼는데 다수에 속하는 사람은 모른다. 소수자 경험을 해 보면 안다. 차별 사례를 보면서 감수성이 생길 수도 있다. 저도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으로서 성폭력 피해자를 무수히 보지 않았으면 이 감수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10년간 경험이 쌓이니 잘 흔들리지 않는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빨리 신고하지 않았나’ ‘너도 즐긴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해 봐야 소용없고, 더 맞을 게 뻔하니까 참는 건데 이해를 못 한다. 그런 이들에게 ‘너는 군대 가서 상관이 때릴 때 좋아서 참았니? 즐긴 거야?’라고 물으면 그나마 이해한다. 끊임없이 인권 감수성을 갖도록 자기를 독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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