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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7월 국회에서 “나는 임차인입니다” 자유발언으로 일약 ‘김종인표 보수 혁신’의 총아가 됐다. 신드롬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16일 방역 당국이 “분모(검사자 수)에 대한 언급 없이 확진자 수만 발표”한다며 “필요할 때 검사를 늘려 공포를 조장”하는 등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의심했다. 1,440명 항체검사에 대해 “요즘 감염 경로를 모르는 확진자 비중이 4분의 1에 이르는데도 이런 결과(항체 보유율 0.07%)가 나왔으니 믿기 어렵다”고 했다.
□방역 당국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단순 사실부터 틀린 것이, 질병관리청은 보도자료에 매일 검사자 수를 밝혀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8일 “진단검사에는 전국 지자체와 360곳 민간 의료기관이 참여한다”며 “조작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이 확진자 중 깜깜이 비율(25%)과 전체 인구 중 항체 보유자 비율(0.07%)을 단순 비교한 것도 경제학자 출신답지 않다. 추가 검사를 해야겠지만 인구 대비 확진자 비율(0.04%)을 감안하면 항체 보유율이 아주 이상한 건 아니다.
□정부가 검사량을 조절하려 마음먹었다면 2, 3월 대유행 때 하루 1,000명의 확진자가 나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에 문을 열어둬 이 지경이 됐다’는 야당의 거센 비난, 전 세계의 한국발 입국 차단 수모를 무릅쓰면서도 질병관리청은 ‘과하게’ 진단·추적했고, 청와대는 막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 때와 단적으로 비교된다. “메르스 때 질병관리청이 정말 힘들어했던 것은 전문적 판단ㆍ제안을 내도 윗선에서 정치적 고려 때문에 묵살했던 것"이라고 한 기자는 말한다.
□합리적 보수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윤 의원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의혹을 불식시키자는 뜻이었다고 뒤늦게 주워 담았는데, 그게 진의라면 기초 연구를 위한 인력과 예산 지원을 주장했어야 옳다. 그나마 질병관리청의 위상과 신뢰가 훼손되지 않은 것을 야당은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언젠가 그들이 정권을 잡을 때 굳건한 신뢰자산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닥쳤을 때 다시 정치가 방역을 망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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