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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간 3만명에 의료 봉사… "어려울 때 진 빚 갚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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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간 3만명에 의료 봉사… "어려울 때 진 빚 갚는 것일 뿐"

입력
2020.09.16 16: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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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서 치과의원 운영하는 박종수 원장
아버지 암투병 때 무료 수술·장학금 등 도움 계기
2018년부터 지인 뜻 이어 무료 급식소 운영
급식소 조영도 이사와 함께 LG의인상 수상

광주광역시에 있는 '사랑의 식당'에서 박종수(오른쪽) 원장과 조영도 이사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 줄 도시락을 싸고 있다. LG그룹 제공

광주광역시에 있는 '사랑의 식당'에서 박종수(오른쪽) 원장과 조영도 이사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 줄 도시락을 싸고 있다. LG그룹 제공

"저는 55년간 무료 진료 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고 있는 겁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치과를 운영 중인 박종수(80) 원장은 한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해 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박 원장은 서울대 치대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5년부터 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무료 진료 봉사를 다닌 이후 지금까지 55년 동안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왔다.

LG복지재단은 한 평생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해 온 박 원장의 공동체 의식과 이웃사랑 정신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LG의인상을 수여키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박 원장을 봉사의 길로 인도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부친의 오랜 암투병이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못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병세는 점점 악화됐다. 박 원장은 서울대 치대에 입학 한 후 과외교사로 번 돈으로 아버지 치료비에 보탰지만 역부족이었다. 국립의료원에 무료 치료을 간청했지만 극빈층이 아니란 이유로 거절당했다. 박 원장은 6개월간 아침 저녁으로 국립의료원을 찾아가 사정하고 또 사정했다. 박 원장의 간절함에 감동한 국립의료원 측은 무료로 아버지의 암 수술을 진행했다. 박 원장 아버지의 삶은 그 덕분에 몇 년 더 연장될 수 있었다.

박 원장은 "돈 없는 사람들은 큰 병 앞에 속수무책이란 걸 그 때 알게 됐다"며 "당시 아버지의 수술을 무료로 해 준 국립의료원 의료진, 내 사정을 알고 장학금을 준 학교 교수님과 선후배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평생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본격적인 무료봉사는 군의관 생활과 함께 시작됐다. 천주교 신자인 박 원장이 광주 호남성당에서 구두닦이 출신 허상회씨를 만나, 그가 돌보던 직업소년원 아이들 30~40명에게 무료 진료해 준 게 출발점이었다. 박 원장은 이후 흑산도, 만재도, 홍도, 장도 등 전남 지역 섬이란 섬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매주 의료 봉사를 다녔다.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군 생활 도중에도 현지 주민들을 돌보기 위해 새벽 3시까지 무료 진료에 나서기도 했다. 결혼 이후 줄곧 박 원장과 의료 봉사에 동행 중인 아내 역시 진료 현장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박 원장은 의료 봉사로 인연을 맺은 허상회씨가 1991년 시작한 무료 급식 봉사에도 힘을 보탰다. 허씨가 세상을 뜬 2018년 이후엔 무료급식소 공익법인인 '사랑의 식당'까지 책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급식소 운영이 힘들어 진 이후로는 매주 평균 650명에게 1인당 도시락 2개씩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박 원장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 베트남 전, 5·18 민주화운동 등을 겪으면서 소중한 인간의 생명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해왔다"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봉사 활동을 행복한 마음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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