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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파 외교관과 9ㆍ19군사합의

입력
2020.09.1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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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최종건(오른쪽) 외교부 1차관과 스티븐 미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10일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한미 외교차관회담을 갖기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최종건(오른쪽) 외교부 1차관과 스티븐 미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10일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한미 외교차관회담을 갖기 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역대 최연소(46세) 외교부 차관', '사상 첫 비(非)외시 출신',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라인 출신 실세'. 지난달 새로 부임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뒤를 따르는 여러 말들 중에서도 단연 그를 화려하게 비추고 있는 것은 '자주파 출신 외교관'이라는 수식어다.

'자주파-동맹파' 구분법의 원류(原流)는 노무현 정부다. 2004년 외교통상부 북미국 간부가 사석에서 참여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한 게 청와대에 투서로 들어갔다. 이른바 '워싱턴 스쿨' 출신 외교관들이 새 정부에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됐다. 청와대의 잡도리 끝에 당시 윤영관 장관과 위성락 북미국장이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이때부터다. 동맹 중시 경향이 강한 외교부는 동맹파로,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외교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해온 진보 세력은 자주파로 각각 분류됐다. 학자 시절 자주파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최종건이 동맹파의 아성(牙城)이라는 외교부에 들어왔으니, 양측 간 어색한 공기가 흘렀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외교부 입성 전인 청와대 근무 시절 최종건의 최대 치적은 뭐니 뭐니 해도 2018년 도출된 '9ㆍ19 남북군사합의'다. 미중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가 더 이상 북한의 도발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곳이란 점을 주변국에 증명해야 했다. 남북의 각고 끝에 증거물로 내놓은 게 9ㆍ19 남북군사합의다.

남북미가 짜놓은 온갖 전쟁 시나리오로 발 디딜 틈 조차 없는 한반도에 '남북 간 적대행위 금지구역'이라는 보도 못한 완충공간을 만들어 냈으니, 이를 이끌어낸 최종건의 공은 작지 않다. 자주파 외교의 쾌거라면 쾌거다.

헌데, 외교부에 갓 입성한 자주파 최종건의 언행이 뜻밖의 연속이다. 취임사를 통해 "일도양단(一刀兩斷)의 프레임을 거부하자"며 외교적 융통성을 강조하더니, 최근 방미 길엔 양심선언이라도 하듯 "한미동맹이 우리 외교의 기본"이라고 했다.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뒤엔 '동맹대화'라는 새로운 협의체 구성에 양국이 공감했다며 이를 성과물로 내놓았다. 동맹끼리 동맹대화라니, 이름 한번 새삼 장대하다.

일부 보수 언론 시각처럼 자주파 최종건은 동맹론자로 전향한 것일까. 또는 외교부 고위직으로 옮겼으니 그에 맞는 행색 정도는 갖추겠다는 건가.

그래 보이진 않는다. 그보다는 최근 외교적 현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비핵화 대화는 멈췄고, 서울을 향한 평양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갑게 변했다. “우리끼리라도 먼저 잘해보자”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다. 미국 대선 전까진 열어주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서 동맹이라도 확실히 잡아둬야 한다. 그래야 대선 뒤 북미대화가 혹여 재개됐을 때 우리가 소외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에 와서 동맹이 아쉬워진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9ㆍ19 남북군사합의 도출 과정에서 최종건의 주요 역할 중 하나도 미국 설득이었다. 2만8,000명의 미군이 주둔 중인 한반도에 남북 주도로 군사행위 금지구역을 놔보겠다 하니, 미군의 불안감이 오죽했겠나. 미군이 문제를 제기할 적 마다 이해를 구하려 다녔던 게 그였다고 한다.

애당초 그를 자주파 출신 외교관이라고 평가한 것 자체가 온당하지 못했던 듯 하다. 자주파의 외교가 따로 있고 동맹파의 외교가 따로 있지 않으니 말이다.

[기자사진] 조영빈

[기자사진] 조영빈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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