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한국 제1의 과제 ... '불평등의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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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한국 제1의 과제 ... '불평등의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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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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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불평등

편집자주

2020년대 지구적 사회 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2016년 국제 비정부단체 옥스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의 재산이 전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1%를 차지했다. 게티이미지뱅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를 뒤흔든 가장 큰 사회문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불평등일 것이다.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점령 시위의 일차적 타깃도 ‘1 대 99 사회’였다. 어떤 이들은 ‘1 대 99 사회’가 현실을 과장했다고 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계는 이것이 현실임을 보여준다.


불평등을 어떻게 봐야 할까

2016년 국제 비정부단체 옥스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의 재산이 전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1%를 차지했다. 2009년 44%, 2014년 48%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반면 하위 50%의 재산은 2010년보다 41% 이상 줄었다. 이 과정에서 최상위 부자들의 재산은 더욱 늘어나 그들 62명의 재산이 하위 50% 전체의 재산과 같아졌다.

불평등이란 말 그대로 평등하지 않다는 의미다. 사회학자 신광영은 이 불평등이 소득·재산과 같은 경제적 불평등, 지능·체력·외모와 같은 생물학적 불평등, 학력·지위와 같은 사회적 불평등 등 다양한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봤다. 현대사회에서 불평등은 이런 여러 불평등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구조화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불평등을 구분하는 또 다른 기준은 ‘기회의 불평등’과 ‘소유의 불평등’이다. 기회의 불평등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자격·기회 등이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현상을 말한다면, 소유의 불평등은 재산·권력·명예 등을 갖고 있는 정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기회의 불평등이 ‘절차적 불평등’이라면, 소유의 불평등은 ‘실질적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평등은 서구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어느 나라든 중요한 사회문제를 이뤘다. 자본주의가 불평등에 친화적인 체제인지는 논쟁적인 이슈다. 사실판단의 관점에서 적절한 분배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시장에서의 경쟁과 사적 소유를 기본 원리로 삼아온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증가시켰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서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복지국가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로 칭하는 것도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불평등을 그만큼 완화시켰기 때문이었다.

더하여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불평등이 지구적 차원에서도 관찰된다는 점이다. 이 지구적 불평등의 위계를 세계은행(World Bank)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을 중심으로 고소득국가, 중위소득국가, 저소득국가로 구분한 바 있다. 2003년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40퍼센트는 저소득 국가에서 살고 있고, 단지 15퍼센트만 고소득국가에서 살고 있다. 또, 지구적 차원에서 4명 중 1명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안타깝게도 1980년대 이후 이러한 지구적 빈곤은 증가해 왔다.


2020년대와 불평등의 미래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불평등이 다시 크게 주목 받은 것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된 이후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이끈 금융자본은 ‘20 대 80 사회’를 창출했고, 앞서 말했던 ‘1 대 99 사회’를 만들어왔다. 그 결과, 서구에서 불평등에 대한 대처는 대단히 중요한 국가 정책 목표가 됐다.

이러한 불평등을 선구적으로 비판한 이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다. 크루그먼은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두 번째 ‘금박 시대(Gilded Age)’라고 명명했다. 마크 트웨인과 찰스 워너가 함께 쓴 소설 제목에서 따온 금박 시대란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곪아 있는 시기를 의미했다. 고도성장이라는 화려한 표층 아래 빈부 격차라는 어두운 심층이 결합해 있던 시대가 금박 시대였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분석도 특기할 만하다. 스티글리츠가 주목한 것은 불평등으로 치러야 할 대가였다. 불평등의 증가가 경제 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약화시켜 저성장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처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더 이상 기회의 나라가 아니며, 불평등이 결국 국민통합마저 훼손시키고 있다고 스티글리츠는 경고했다.


토마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의 증가에 주목, 21세기 자본주의 미래를 우울하게 전망했다. 사진은 2014년 내한한 토마 피케티. 한국일보 자료사진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해 세계적 주목을 받은 저작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013년에 내놓은 ‘21세기 자본’이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다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고, 결국 소득분배가 악화된다는 게 피케티의 논리였다.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의 증가에 주목하고, 21세기 자본주의 미래를 우울하게 전망했다.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인구 성장과 기술 진보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저성장이 지속되며, 그 결과 자본의 소득 몫이 커지고 그 힘이 더욱 강력해지는 ‘세습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게 피케티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견해에 반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불평등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와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적 화두가 됐다. 2014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불평등 증가가 경제성장에 압박을 가하고 불안정을 부추긴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이 낳은 결과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정치적 포퓰리즘의 발흥이었다.

2020년대 불평등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2010년대 후반 세계 경제는 금융위기가 낳은 경제 위기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 둔화가 우려되지만, 투자와 무역은 어느 정도 회복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됐고, 올해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다시 크게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불평등은 앞서 말했듯 경제에서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이다. 이 가운데 경제적 불평등은,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에서 볼 수 있듯, 어떤 경제체제를 이룰 것인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불평등의 미래와 연관해 현재의 뉴 노멀 세계경제에서 세 가지 경향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첫째, 정보사회의 진전이 비가역적인 한, 경제의 지구적 네트워크는 더욱 촘촘해질 것이다. 둘째, 인공지능 등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이 경제는 물론 사회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셋째, 코로나19 팬데믹이 소환한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난 4월 17일 베트남 하노이 북뜨리엄군 문화센터에 마련된 무료 쌀 배급소 '쌀 ATM' 앞마당에서 빈곤층들이 2m 간격을 유지한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코로나로 생계난을 겪는 빈곤층을 위해 독지가들이 후원한 쌀을 가구당 하루 3㎏씩 나눠준다. 연합뉴스


분명한 사실은, 2020년대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분배 및 복지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불평등이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불평등을 완화할 정책으로 스티글리츠가 공정 거래를 위한 금융 투명성 강화, 독점금지법 강화,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제시한다면, 피케티는 세습자본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누진적 소득세, 글로벌 자본세, 고등교육 접근권 향상 등을 강조한다.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노동계급 안의, 나아가 지구적 차원에서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압착’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부여된 가장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와 불평등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이 크게 관심을 모은 것은 2015년 ‘수저계급론’을 통해서였다. 수저계급론은 사회적 신분과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었다. 금수저가 최상류층이라면 흙수저는 하류층이다. 수저계급론에 공감을 표한 이들은 특히 젊은 세대였다. 이들은 신계급사회로 가는 우리 사회 현실을 ‘헬조선’이라고 풍자했다.

지난 2010년대 우리 사회의 결정적 분수령을 이룬 2016년 촛불집회에서도 그 일차적 촉발 요인은 박근혜정부의 국정 농단에 있었지만, 그 사회적 배경 요인은 신계급사회로 가는 한국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회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세습화되는 경향에 대한 적극적 대응은 국가적 과제로 부상했다.


이철승은 '불평등의 세대'에서 586세대가 정치 및 시장권력을 장악해 청년과 여성이 세대 간 불평등의 희생자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평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저작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어, 이철승은 ‘불평등의 세대’(2019)에서 586세대가 정치 및 시장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청년과 여성이 세대 간 불평등의 희생자가 됐다고 분석했고, 조귀동은 ‘세습 중산층 사회’(2020)에서 부모의 계층이 자녀의 학벌로, 그리고 고소득 일자리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견해들에 대한 경험적 반론의 연구가 물론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세습의 방식이든 교육의 방식이든 불평등이 점점 구조화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했듯, 불평등은 저성장으로 이어지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무엇보다 인간다운 삶의 기품을 훼손시킨다. 2020년대 대한민국의 제1의 과제는 바로 이 불평등의 완화와 해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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