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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습정치 속 의원 비서 출신 총리... '성공 신화' 쓴 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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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습정치 속 의원 비서 출신 총리... '성공 신화' 쓴 스가

입력
2020.09.14 15:35
수정
2020.09.14 20:54
2면
0 0

의원비서ㆍ시의원 거쳐 '밑바닥 정서' 밝아
北납치문제 주도하며 아베 총리와 첫 인연
손타쿠 초래한 인사권 장악 등 비판도 많아

일본의 집권여당인 자민당 총재로 당선돼 차기 총리를 예약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일본의 집권여당인 자민당 총재로 당선돼 차기 총리를 예약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일본 자민당 총재는 '도련님'이라 불리는 세습의원이 즐비한 일본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일본에선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 '3반'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일본어로 마지막 글자의 발음이 '반'인 '지반(조직)ㆍ간판(지명도)ㆍ가방(돈)'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3반은 물론 당내 파벌도 없는 그가 밑바닥부터 경력을 쌓아 총리 취임을 눈앞에 둔 건 한 편의 '성공 신화'다. 그러나 그늘이 엄존한다. 7년 8개월간의 아베 장기정권에서 드러난 총리관저 주도 정치의 폐해가 아베 정권 내내 2인자였던 '스가 시대'에도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딸기농사 싫어 상경... 뒤늦게 정치 입문

스가 요시히데 신임 자민당 총재 프로필. 그래픽=김대훈 기자

스가 요시히데 신임 자민당 총재 프로필.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는 1948년 아키타현 딸기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키타현은 2018년 기준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지방자치단체) 중 1인당 평균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업을 잇길 바라는 부친의 뜻에 반발해 도쿄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골판지 공장에서 일하며 입학금을 마련해 남들보다 2년 늦게 호세이대 법학부(정치학과)에 진학했다. 사립대 중 등록금이 가장 싼 학교라는 이유였다. 경비원과 카레식당 보조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고 졸업 후 일반회사에 취직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둔 뒤 가나가와현을 지역구로 둔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 중의원 의원의 비서로 11년간 일했다. 1987년(38세) 요코하마 시의원으로 선출직에 진출했고, 1996년(47세) 중의원 선거에 당선돼 중앙정치에 입문했다. 이 기간 현장에 귀를 기울이며 밑바닥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관방장관 취임 후 휴대폰 요금 인하, 왕실과 외교사절 전용시설이었던 영빈관 일반 공개 등을 주도한 계기였다.

그가 8일 총재 후보 소견발표에서 "50여년 전 상경할 때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면서 "나 같은 보통사람도 총리를 목표로 할 수 있는 것이 일본의 민주주의"라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시종일관 대북강경파이자 아베의 '그림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2014년 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2014년 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3대째 세습의원으로 정치적 배경이 정반대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첫 인연은 북한이었다. 아베 총리는 2002년 관방부장관으로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의 화물ㆍ여객선 만경봉호 입항금지를 위한 입법(항만법)을 추진하던 중 스가 총재에게 도움을 청했다. 스가 총재는 2013년 인터뷰에서 "이런 사람을 언젠가 총리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2년 저서 '정치가의 각오-관료를 움직이게 하라'에서 2004년 5월 통과시킨 만경봉호 입항금지법을 대표적 업적으로 내세웠다. 2006년 총무장관 시절엔 NHK 라디오를 통해 납치문제 관련한 대북방송을 실시하도록 했다.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 제재만이 아니라 일본 독자 제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소장의원 시절부터 줄곧 대북문제에선 강경파였다.

이후 아베 총리의 '그림자'로 정치궤적을 함께 했다. 2006년 9월 아베 1차 집권시 총무장관으로 입각했다. 참의원 선거 참패와 지병 악화로 1년만에 단명한 아베 총리를 격려하며 2012년 9월 당 총재 선거에 재도전할 것을 권유했다. 아베 총리의 파벌(호소다파)에선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무파벌인 그가 아베 총리의 재기를 이끌었다.

아베 장기정권 폐해에 대한 공동책임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14일 오전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웃고 있다. 이날 오후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되면서 사실상 관방장관으로서 마지막 회견이 됐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14일 오전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웃고 있다. 이날 오후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되면서 사실상 관방장관으로서 마지막 회견이 됐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재집권 후 스가를 관방장관에 임명하며 보답했다. 2016년 7월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에 올랐고 지난해 4월 새 연호를 발표하면서 '레이와(令和) 아저씨'라는 애칭을 얻으며 국민적 지명도를 높였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조명받고 있지만 정권의 2인자였던 그에게 아베 장기정권의 폐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이들도 많다. 그는 2014년 내각관방에 내각인사국을 신설한 뒤 인사를 통해 약 600명의 고위 관료들을 장악했다. 고향납세 제도 같은 정부 시책에 반대하거나 문제점을 제기한 관료들을 좌천시키며 인사권을 무기로 관료사회에 '손타쿠(윗 사람의 의중을 헤아려 행동함) 문화'의 만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많다.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당시 재무성의 공문서 조작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부 대변인으로서 매일 두 차례 언론 앞에서 국정 전반을 설명해왔다. 하지만 불리한 질문에는 원론적 답변을 반복하는가 하면 때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017년 6월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논란과 관련해 도쿄신문 기자가 40분간 23차례나 질문을 하자, 그는 도쿄신문과 관저 출입기자단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언론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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