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 했다가 기소 위기 처한 변호사... 논란 가열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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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 했다가 기소 위기 처한 변호사... 논란 가열되는 이유는

입력
2020.09.13 09:00
수정
2020.09.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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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저유소 화재'로 기소된 이주노동자 변호인
경찰 강압수사 폭로 이유로 '기소 의견' 검찰 송치
"공익제보 위축될라"... 변호사 업계 반발 잇따라

최정규 변호사가 2017년 경기 안산사무소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한 인권변호사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혐의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경찰의 강압수사 정황이 담긴 영상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경찰관 얼굴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도, 목소리 변조도 하지 않고 그대로 건넨 게 문제가 됐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 성추행ㆍ가정폭력 피해 이주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 지원에 앞장선 공로가 인정돼 올해 1월 ‘제1회 홍남순 변호사 인권상’을 받은 최정규(43) 변호사 얘기다. 최 변호사는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으로 기소된 이주노동자 디무두 누완(29)씨의 변호인이기도 하다.

“경찰이 123회 자백 강요” 폭로한 변호인

2018년 10월 경기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인근에서 발생한 화재는 검은 연기가 서울까지 뒤덮을 만큼 매우 큰 사고였다. 디무두씨가 저유소 근처에서 날린 풍등의 불씨가 건초로, 그 다음엔 저유탱크에서 흘러나온 유증기로 옮겨 붙은 게 화근이 됐다. 디무두씨는 현재 실화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문제가 된 건 110여억원의 재산 피해뿐만이 아니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자백 강요, 고압적 태도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기 고양경찰서 소속 A 경위는 반말, 비속어를 쓰며 총 123회에 걸쳐 “거짓말 하지 말라”거나 “거짓말 아니냐”라면서 디무두씨를 몰아세웠다. 경찰은 그의 이름 일부와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 종류를 언론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 및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에 대해선 “담당자 주의 조치와 함께 직원들에게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및 피의사실 공표 관련 직무교육을 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강압수사 사실이 드러나고 인권위 권고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최 변호사의 제보였다. 그는 정보공개청구로 얻은 피의자 신문 당시의 영상을 인권위는 물론, 한 방송사에 제보하는 등 인권 침해 행위를 적극 알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 경찰의 강압수사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 및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다"며 담당자 주의조치 및 직무교육을 권고했다. 사진은 인권위 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익제보자에 돌아온 건 ‘기소’ 의견 송치

변호인으로서의 문제제기인 동시에 공익제보를 한 대가는 A 경위의 고소였다. 그는 “사건 수사에 관한 내용은 물론 내 이름과 음성, 얼굴 등을 알아볼 수 있는 개인정보가 저장된 영상을 타인에게 제공했다”면서 올해 4월 최 변호사와 관련 보도를 한 방송사 기자를 고소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2일 최 변호사를 ‘기소 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 반면 해당 기자는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상반된 처분이었다.

변호사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최 변호사 사건에 대해 ‘공익제보 탄압’으로 규정, 경찰을 강하게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9일 성명을 내고 “(경찰의 행위는) 현 정부의 공익제보 활성화 방침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정이자, 우리 사회의 풀뿌리 감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수사기관의 폭거”라며 분노를 표했다. 이튿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가세했다. 민변은 성명에서 “(경찰의 판단은) 공익제보를 통해 실현되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공권력 남용에 대한 민주적 감시라는 공적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자에 대해선 불기소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 비춰 ‘적극적인 제보를 한 최 변호사에게 보복 수사를 한 게 아니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1990년 6월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석방운동 당시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익제보 위축' 우려에 논란 증폭

경찰의 이번 사건 처리가 거센 논란을 부르고 변호사 업계도 들끓게 만든 건 ‘공익제보 위축’이라는 악영향을 낳을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기저에는 공익제보가 있다’는 믿음으로 공익제보자 보호를 강화해 왔다. 1994년 시민사회에서 ‘내부비리신고자 보호제도 도입’을 주장한 지 17년 만인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ㆍ시행됐다. 2018년에는 공익제보자 신원 노출을 막기 위해 ‘비실명 대리신고제’도 도입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공익제보자가 옳은 일을 하고도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복되는 데에서 비롯된 반성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예컨대 1990년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은 업계 로비로 감사가 중단됐음을 제보했다가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됐다. 6년간의 지난한 법정투쟁 끝에 무죄를 받아내긴 했지만, 그 과정이 험난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의 증거인멸 지시를 폭로했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도 마찬가지다. 상관 지시로 증거인멸 과정에 가담했던 그는 결국 2013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해당 상관은 ‘본인의 범죄’에 대한 증거 인멸이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것과 비교하면 아이러니한 결과였다.

10일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최 변호사 사건에 대해 “A 경위가 개인 자격으로 고소한 것이며, 영등포경찰서는 보복적 차원에서 접근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사실관계를 종합적으로 법리 검토한 결과”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단순한 사안으로 볼 수 없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공익제보자 보호ㆍ지원에 힘써 왔던 그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국가기관의 권력 행사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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