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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연주자의 영어 마스터 비결

입력
2020.09.13 14: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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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종종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물으면서 이미 듣고 싶은 대답은 있는 눈치다. 특정 장르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다른 사람 연주를 들으러 다닌다 같은, 흔히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기대할 법한 대답들이다. 하지만 내 취미는 아빠와 조조영화 보러 가는 일이다. 그것도 액션 어드벤처물을 좋아한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토르 편을 봤을 땐, 토르를 이해하기 위해 북유럽 신화에 대한 책을 구해다 모조리 읽기도 했다. 영화관을 나설 때면 꼭 영화관 안의 영화 브로슈어를 챙긴다. 다음에 볼 영화를 고르기 위해서다. 어느날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아빠 손에 브로슈어가 한가득이었다. 그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아니나 딸에 대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그린 어린 임주희(왼쪽)와 아빠.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그린 어린 임주희(왼쪽)와 아빠.


내 취미를 아는 아빠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하루 연습이 다 끝나면 1시간씩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며 영화를 보자는 것. 아빠는 아무래도 운동을 좀 시키고 싶으셨나보다. 피아노란, 음악이란, 아니 다른 그 무엇이라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일테니까.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했다. 매일매일 1시간씩,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곧 문제가 생겼다. 매일매일 열심히 달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다 소진된 것.

액션 어드벤처물을 떠나 다른 장르의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잘 보지 않았을, 좀 까다로운 법률 문제를 다룬 외화도 보게 됐다. 달리기를 하면서 그 영화들을 한편, 두편 보다보니 어느새 그 대사들을 외우게 됐다.

화면 속 작은 자막을 보면서 달리기를 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대화를 통째로 듣고 외우는 식으로 영화를 이해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본 영화는 오기가 나서 대사가 귀에 들릴 때까지 돌려보곤 했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이런 걸 취미 삼아 한 것도 벌써 7년이나 됐다.

줄리어드 음악원을 갔다 하니 많은 분들이 영어 공부를 궁금해하신다. 그 어려운 곡들을 연주하는 연습만으로도 벅찰텐데, 어떻게 따로 시간을 냈느냐는 질문들도 하신다. 개인적으로 학원이나 어학원을 따로 다닌 적은 없다. 런닝머신 위에서 외국 영화를 보며 들은 영어, 그게 전부다. 그 실력으로 토플(TOEFL) 시험을 치렀다.

영어 공부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분들에게 자칫 누가 될 수 있는 얘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저 시작하자는 것이다. 영화 보는 취미는 영어 성적을, 유학을 의식한 게 아니었다. 그저 영화가 재미있어서, 운동까지 겸하려다, 뛰면서 자막을 볼 수 없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영어 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우선 시작부터 하자.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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