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m 절벽 아래 부서진 자동차만 발견
평소 착용한 안경ㆍ가방도 없어
울창한 금강소나무숲과 맑은 물로 유명한 경북 울진 불영계곡에서 40대 남성이 추락 후 부서진 차량만 남겨둔 채 두 달 넘게 실종 상태다. 경찰은 군청과 소방, 군부대 등으로부터 1,000명 이상의 인력을 지원 받고 드론, 헬기, 다이버까지 투입해 일대를 뒤졌지만 실오라기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 7월 1일 112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의 휴대폰이 계속 꺼져 있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실종 신고였다. 가족들이 애타게 찾은 사람은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최모(47)씨. 경찰은 최씨 소유 차량의 번호를 토대로 전국의 폐쇄회로(CC)TV를 뒤졌다. 그 결과 실종 직전 고향인 울진에 며칠간 머물렀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울진지역 CCTV를 검색했고, 실종 신고가 접수되기 전 최씨가 불영계곡 인근을 주행한 장면을 찾았다.
경찰은 불영계곡 일대를 수색한 끝에 지난달 5일 계곡 내 휴게소 인근 도로에서 70m 절벽 아래로 추락한 최씨의 검은색 차량을 발견했다. 차는 계곡으로 굴러 심하게 부서진 상태였다. 하지만 차주인 최씨는 없었다. 그가 평소 착용하는 안경과 휴대폰, 가방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최씨를 찾기 위해 이번에는 불영계곡 일대를 뒤지기 시작했다. 불영계곡은 울진에서 경북 봉화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36번 국도를 끼고, 고지대 산에서 동해안까지 길이 약 15㎞의 하천이 흐르는 골짜기다. 금강소나무가 울창한 세덕산(해발 740.8m)과 천축산(해발 653.3m) 사이 깊게 파인 절벽 아래로 구불구불하게 불영천이 흐른다.
산세가 험한 탓에 경찰은 소방과 울진군청, 인근 군부대 병력에 지형을 잘 아는 마을 주민들까지 동원해 최씨를 찾아 나섰다. 헬기와 드론, 전문 잠수부까지 투입해 20일 넘게 대대적인 수색을 펼쳤지만, 차량 외에는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최씨는 실종신고 하루 전인 6월 30일 0시34분쯤 차량 추락지점과 가장 가까운 불영계곡 내 CCTV에 차를 타고 지나는 모습이 찍혔다. 경찰은 최씨가 이 시간쯤 계곡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의 실종은 위장일까?
최씨의 현 거주지는 서울시 서대문구다. 하지만 실종 신고 이틀 전인 6월 29일 불영계곡과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울진지역 CCTV 여러 곳에 잡혔다. 그는 이날 오후 4시부터 이후 4시간 가량 불영계곡 내 휴게소를 들렀다가 울진읍내로 빠져 나와 편의점 등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또 다시 차를 몰고 계곡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최씨가 짧은 시간 계곡 주변을 배회한 점을 미뤄 차량 추락사고가 '우연이 아닌 계획'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고 지점이 인적이 드문 불영계곡인 것도 석연치 않은 점이다. 최씨의 차량이 발견된 불영계곡 내 36번 국도는 인근에 새 36번 국도가 닦인 이후 피서객이 많은 여름 휴가철이 아니면 차량 통행이 많지 않다.
최씨의 휴대폰이 차량 추락 추정시간보다 훨씬 전에 꺼진 것도 의문으로 남는다. 전화기는 그가 불영계곡 일대를 한창 배회할 때인 지난 6월 29일 오후 끊겼다. 최씨가 고의로 휴대폰을 껐는지 아니면 배터리가 없어 꺼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최씨의 실종은 사고일까?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차량 감식 결과 최씨가 계곡으로 추락할 때까지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추정했다. 시동이 걸린 채로 멈춘데다 차 안 여러 곳에서 최씨의 혈흔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 운전 중 사고가 났을 때 작동하는 에어백이 터졌고, 자동차 앞 문만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다. 추락 후 앞 유리가 깨지면서 차량 안에는 좌석마다 흙이 튀어 묻었지만, 운전석만 깨끗했다. 하지만 추락 사고 후 최씨가 스스로 빠져 나왔는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감식으로 찾지 못했다.
최씨가 일부러 차를 버리고 사라졌다면 잠적해 지금까지 버틸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해야 한다. 그는 금융기관에 빚이 있었고, 얼마 전 시작한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추락 후 동해로 흐르는 불영계곡 하천에 휩쓸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고 시간으로 추정되는 6월 30일 전후 울진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6월29일 20.4㎜, 다음날 30일에는 73.5㎜의 비가 왔다. 불영계곡은 폭이 약 20m로 협곡 형태의 하천이라 비가 오면 물살이 급격히 빨라진다.
경찰은 전문 다이버를 동원해 강 하류를 비롯, 바다와 만나는 수심 깊은 곳까지 수색했지만, 작은 소지품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최씨가 실종되고 두 달여가 지났다. 경찰은 차량이 발견된 불영계곡 도로 위에 인상착의를 담은 현수막을 걸어둔 채 계속 수사를 진행 중이다.
울진경찰서 관계자는 "실종자와 관련해 아직 별다른 제보나 신고 전화는 없지만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휴대폰 신호를 추적하고 있다"며 "심하게 부서진 차량만 발견된 상태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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