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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불행하진 않으니, 사고가 큰 깨달음 준 셈"

입력
2020.09.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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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체장애 함정균 유튜브 '함박tv'?
지하철 환승에 40분 "영상 만들자" 결심
수도권 93개 환승역 220개 업로드 '호평'
"다양한 장소 휠체어 방문기 기대하세요"

대한민국 장애인은 261만 8,000명(작년 말 기준)에 달한다. 전체 인구 100명 중 5명은 장애인으로 결코 작지 않은 숫자지만, 주변에서 그들을 찾아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왜 그런 걸까. 아마도 장애인들이 주로 폐쇄된 공간에서 그들끼리만 어울리고, 스스로 비장애인과 교류하는 걸 차단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장애인 가운데 장애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율은 17.9%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으면, 장애 인식개선을 더디게 만들 뿐이다. 특히 장애인이 다큐멘터리 속 안타까움의 대상으로만 계속 비춰지게 되면, 왜곡된 시선이 비장애인의 머리 속에 겹겹이 쌓여 장애인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수동적 존재로 머무르게 된다.

‘이래선 안 되겠다’며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은 ‘불편하지만 불행하진 않다’며 유튜브 영상을 통해 비장애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신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느낀 편견과 생활 속 불편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게 소통을 강화하고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세상 속으로 당당히 뛰어든 화제의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다운증후군 장애인을 차례로 만나 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체장애 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 함정균씨가 최근 서울시내 거리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함씨는 2016년부터 휠체어를 타고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지체장애 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 함정균씨가 최근 서울시내 거리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함씨는 2016년부터 휠체어를 타고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노는 게 가장 좋은 유튜버" 함박웃음

보슬비가 내리던 날, 함정균(48)씨는 휠체어용 우비를 쓰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일반 우비는 비와 바람에 모자가 틀어져 앞이 안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새로 산 전동 휠체어 전용 우비는 투명 모자챙이 달려 시야를 가리는 일이 없었다. 카페에는 경사로가 설치돼있고 내부공간이 넓어 함씨가 이동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함씨는 2013년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들과 강원도 속초투어를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미시령고개 커브길에서 일행이 넘어지려고 하자, 이를 피하려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그는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고 1년 9개월간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현재 그는 하반신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상체는 움직일 수 있다.

퇴원한 뒤 휠체어를 타고 복귀한 일상은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두 다리가 멀쩡했다면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30~40분이 걸려도 지하철을 갈아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영상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을 꺼내 환승 상황을 유튜브 ‘함박tv’에 담았다. 별 생각 없이 영상을 올렸는데 반응은 예상보다 컸다.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다’는 반응부터 ‘다른 지하철역의 영상도 제작해달라’고 요청하는 댓글도 있었다. '내가 뭔가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2016년 개설된 ‘함박tv’는 현재 7,000여명이 구독하고 있다. 함씨는 방송콘텐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1인방송 제작스쿨을 통해 익혔던 영상 편집기술을 통해 기획과 촬영, 편집을 모두 혼자 해내고 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기 어려워 카메라 선택의 폭이 좁고, 가슴 높이인 130cm 높이에서 찍을 수 밖에 없어 늘 아쉬움이 남지만, 함씨는 어느새 그가 만든 영상으로 30개가 넘는 상을 수상했다.

영상을 계속 만들어보니 장비 욕심이 생겼다. 교통사고 이후 쳐다보기만 하던 오토바이를 처분하고 카메라를 샀다. 수도권 100개 환승역 가운데 93개 환승역에서 휠체어를 타고 갈아타는 영상을 2년 6개월 동안 220개나 업로드했다. 함씨가 만든 ‘영상지도’는 휠체어뿐 아니라 유모차와 임산부도 참고할 수 있어, 현재는 ‘교통약자를 위한 내비게이션’으로 불릴 정도다.

영상을 통해 전하는 내용은 단순히 교통정보뿐이 아니다. 함씨가 영상을 활발히 올리는 이유에는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을 위한 의도도 있다. 그러면서 지체장애인이 가장 불편해하는 장면을 예시했다. “인도와 차도의 높이차에 따른 불편을 줄이려고 비탈 모양으로 깎아놓은 경사로가 있어요. 지체장애인의 이동통로죠. 그런데 경사로 앞에 차량이 주차돼 있으면, 휠체어 장애인은 차량이 빠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작은 턱이라도 있으면 올라기기가 어렵거든요. 비장애인들은 이런 상황을 잘 모릅니다. 장애인의 삶을 접할 기회가 많으면 자연스럽게 배려가 가능할 겁니다.”

함정균씨가 쌍둥이 자녀와 함께 유튜브 영상을 찍는 모습. 유튜브 캡처

함정균씨가 쌍둥이 자녀와 함께 유튜브 영상을 찍는 모습. 유튜브 캡처


그가 주로 목소리를 내는 지점은 장애인 이동권과 접근성이다. 휠체어를 타고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의 경우 뒷문 경사판이 고장 났거나 버스기사가 내부 좌석을 접지 않아 이동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은 창고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아 외출시 불편했던 적도 많다. 이런 일은 모두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함씨의 진단이다.

그러나 불편함과는 별개로 장애를 얻은 것이 한편으론 ‘감사하다’고 함씨는 전했다. “다치기 전에는 특기였던 마술 공연을 하면서 바깥사람 만나는 게 더 좋았는데, 지금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행복하다”며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으니, 사고가 큰 깨달음을 준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장애인들도 자신처럼 유튜브 채널을 적극 개설할 것을 추천했다. 거리를 활보하는 장애인이 많지 않아 실제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경우가 적지만, 최근엔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의 모습이 자주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다양한 모습을 접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삶은 저렇구나’, ‘저런 점이 불편하겠구나’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동료 장애인들에게 유튜브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해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지체장애인 유튜버’ 대신 불리고 싶은 별칭이 또 있느냐는 질문에, 함씨는 ‘노는 게 가장 좋은 유튜버’라고 말했다. 별칭에 걸맞게 휠체어를 타고 다양한 장소를 찾아가는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게 함씨의 계획이다. 그는 “영상제작과 강연을 하다 보면, 남은 인생이 더 행복해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함정균씨는 '지체장애인 유튜버' 대신에 '노는 게 가장 좋은 유튜버'로 불리고 싶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준희 인턴기자

함정균씨는 '지체장애인 유튜버' 대신에 '노는 게 가장 좋은 유튜버'로 불리고 싶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준희 인턴기자



이혜인 인턴기자 hanehane01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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