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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여성들, 이제 당당히 이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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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여성들, 이제 당당히 이름 공개한다

입력
2020.09.04 07: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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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에 여성 이름 적도록 '인구등록법' 개정
'내 이름은 어디에?’ 운동 3년만에 이룬 첫 성과
"기본권 회복 과정"... 탈레반 집권시 후퇴 우려도

아프가니스탄이 인구등록법 개정에 따라 새로 쓰게 될 국가 신분증 이미지. 여성의 이름을 적을 수 있게 성별란이 포함돼 있다. 트위터 캡처

아프가니스탄이 인구등록법 개정에 따라 새로 쓰게 될 국가 신분증 이미지. 여성의 이름을 적을 수 있게 성별란이 포함돼 있다. 트위터 캡처


아프가니스탄에서 법률적으로 신분증과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이름을 공개할 권리를 얻게 됐다. 아프간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권리를 위해 3년 전부터 벌여 온 '내 이름은 어디에?(#Where is my name?)' 운동의 첫 결실이다.

아프간 내각 법률위원회는 1일 "인구등록법 개정안이 통과돼 여성들이 신분증과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위원회 측은 "국회 통과와 대통령 서명 절차가 남아 있지만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NYT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 간 평화협상이 임박한 가운데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작은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평가했다.

탈레반은 1990년대 후반 집권기에 엄격한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내세워 여성의 삶을 강하게 규제했다. 미국이 2001년 9ㆍ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에 근거지를 내 준 탈레반 정권을 침공해 붕괴시킨 후 아프간 정부는 '여성 인권 신장'을 공언해 왔다. 하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희생돼온 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권리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이름을 부르는 게 금기시돼 있다. 가족 외 다른 사람은 물론 심지어 의사에게도 이름을 밝혀선 안 된다는 구시대적 관습이 여전하다. 여성은 누군가의 딸이나 누이, 어머니로만 불린다. 사망증명서나 묘비에조차 이름을 적을 수 없다. 자녀의 출생증명서에도 아버지의 이름만 기재하도록 돼 있다. 싱글맘이 아이의 출생을 신고하려면 이를 보증해줄 남자 친척이 있어야만 한다.

아프간 정부는 2014년 35년만에 국가 정비 차원의 인구조사를 실시한 이후 2018년 홍채와 지문 등 생체인식 스캔이 포함된 전자신분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 이 신분증에 인종 정보까지 담을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아프간 여성들의 이름을 찾을 권리도 함께 쟁점이 됐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내 이름은 어디에?' 운동이 확산됐다.

사회운동가들은 "남성 우위인 아프간 사회에서 여권 신장을 향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아프간 정부의 이날 발표를 환영했다. '내 이름은 어디에?' 운동을 초창기부터 지지해온 랄레 오스마니는 "아프간 여성들도 이제 남자 없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홀로 학교에도 보낼 수 있게 됐다"면서 "신분증 제도 개정은 여성들이 그간 거부돼온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권리를 회복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프간 여성 인권의 완전한 증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프간 카불 의원인 마리암 사마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우리의 투쟁은 보상받았다"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문화적 변화를 위한 시민사회와 언론, 여성을 비롯한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시민 사이의 더 많은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벌써부터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에 대한 걱정이 나오기도 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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