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은 사후세계가 아니랍니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극락은 사후세계가 아니랍니다

입력
2020.09.02 16:00
수정
2020.09.02 17:54
0 0
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편집자주

불교 경전 반야심경 구절인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가버렸네, 가버렸네, 저 멀리 부처님세계로 가버렸네'라는 뜻이다. 오랜 역사 속에 한국인의 삶 깊숙이 스며든 불교, 그러나 과연 우리는 불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상식과 문화사적 측면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가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천당(天堂)' 하면, 혹자는 기독교 용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천상 세계에 존재하는 신들의 거처’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다. 그래서 요즘은 기독교에서도 천당보다는 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즉 천당은 천국이라는 용어가 정착하는 과도기의 용어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의 천당이나 천상은 기독교의 천국에 상응한다.

그런데 천당이나 천국은 사실 죽음 뒤의 세계가 아니다. 신이 사후세계에만 존재하는 제한된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불교에는 위대한 군주는 신들의 세계를 오간다는 내용이 있다. 또 기독교에서 예수의 승천과 재림, 그리고 이슬람 무함마드의 승천 등을 보면 천상은 사후의 단절된 세계일 수 없다.

사실 신들의 세계가 사후세계로 분절되는 것은, 인간의 탐구 영역이 넓어지면서 신들이 이 세계 존립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즉 신은 인간에 의해 주 무대를 사후세계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신은 사후세계의 주관자라는 타이틀 속에, 이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다소 어정쩡한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그런데 신 중심이 아닌 인본주의의 불교에서는, 신들의 세계보다도 완전한 인간세계를 더 이상적으로 인식한다. SF 영화를 보면,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나 우주 속에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이상세계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처럼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이상세계, 그것이 바로 극락이다. 즉 극락은 사후세계가 아닌 우리 세계와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수평 세계인 것이다.

극락을 ‘서방극락’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서방은 극락이 위치하는 장소가 우리 세계의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즉 극락의 위치와 관련된 방위인 셈이다. 물론 극락은 마치 다른 은하 속 세계처럼 서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존재한다.

극락에는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무량수(無量壽) 즉 영원히 죽지 않는 붓다가 존재한다. 붓다란, 깨달음을 성취한 완성자라는 의미다. 이 완전한 존재인 아미타불이 리더가 되어 펼치는 이상세계, 그곳이 바로 극락이다.

극락이란, 즐거움이 지극한 곳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극락을 안양(安養)으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경기도의 안양시나 불국사의 안양문 등은 이에 따른 명칭이다.

그런데 극락에서의 즐거움은 세속적인 쾌락이 아닌 공부와 수행을 통해 진리로 나아가는 기쁨이다. 그래서 나는 농담 삼아 ‘공부 싫어하는 사람은 극락에 가는 게 지옥만도 못할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한다.

그러나 극락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어벤져스' 같은 초인들만 갈 수 있다. 이런 초인을 불교에서는 보살이나 아라한이라고 한다. 물론 아미타불과 극락에 대한 믿음이 투철한 신앙인에게는 아미타불의 특별 초청장이 도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바꿔 말하면, 일반인들은 극락에 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윤회를 통한 환생이다. 즉 이곳에서 죽어 극락에 다시 태어나는 방법이다.

아프리카의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가 북유럽의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보자. 그러나 아이에게는 비행기 티켓을 구할 방법이 없다. 이때 아이가 윤회론을 믿는다면, 죽은 뒤에 북유럽에 환생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극락이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 오해가 빚어지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극락은 죽음을 통한 환생의 세계지, 사후세계는 아니다.

극락에 환생하는 방법은 연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연꽃은 해가 뜨면 피고 석양에는 오므라드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연꽃은 재생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했다.

극락에 환생하는 이들은 인큐베이터와 같은 연꽃 속에서 태어난다. 이는 연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청정하게 태어난다는 의미다. 이를 연화화생(蓮華化生)이라고 한다.

연화화생을 통한 재생의 모티브는 '심청전'에 수용되어, 심청이 용궁에서 연꽃을 타고 돌아오는 구조를 띠게 된다. 이는 오랜 불교의 역사가 남긴 우리 문화 속의 흔적이다.

극락은 온전히 삶의 세계일 뿐 사후세계와는 무관하다. 즉 극락의 정신 속에는 불교의 인본주의적인 이상과 인간 존중의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자현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