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요일 오전을 깨워줄 클래식 한 곡 어떠세요? 클래식 공연 기획사 '목프로덕션' 소속 연주자들이 '가장 아끼는 작품' 하나를 매주 추천해 드립니다.
어린시절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은 열다섯살 무렵 집안 사정으로 더 이상 음악 공부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빈에서 음악 공부를 본격 시작한지 5년 만이었다. "음악을 접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은 채 집에서 악보와 음반을 정리하던 박수현은 무료함이나 달랠 생각으로 음반 더미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앨범 하나를 집어 CD플레이어에 넣고 틀었다. 배경음악, 혹은 백색소음 삼아 짐 정리를 할 심산이었다.
그러다 어떤 곡 하나가 흘러나왔다. 선율 속의 음표 하나하나가 귀에 들어오면서 박수현은 하던 일을 멈춘 채 방 한가운데서 얼어붙었다. 선율에 대한 충격으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그 때 그 노래는 박수현에게 "정말 음악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박수현이 자신의 소중한 꿈이자 삶의 전부였던 음악과 작별해야 한다는 슬픔으로 가득했던 순간 음악이 마음을 쥐고 흔들자 대성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서러움과 슬픔이 오케스트라의 포르테시모(매우 세게) 합주처럼 터져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박수현의 첫 만남은 그랬다.
협주곡 2번의 1악장이 끝나갈 때 열다섯살 박수현에겐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음악이 좋은데 그만둘 수 없다. 음악이 이렇게 느껴지고 확실하게 보이는데, 강렬하게 사랑하는 일을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노래는 위기 속 박수현을 다시 일으켜 음악의 길로 인도했다.
박수현은 이 곡에 대해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화성은 모두 모여있다"면서 "느린 악장에서 빠른 악장으로 이르기까지 속도감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돋보인다"고 극찬했다. 박수현은 "아직도 1악장이 끝난 뒤 이어지는 2악장은 눈물 없이 듣기가 힘들어서 오히려 자주 듣지 못한다"고도 했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쓰기 전 라흐마니노프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작곡가로서 삶이 끝났다"며 손가락질 받았던 그가 절망을 딛고 탄생시킨 눈물의 걸작이다.
박수현은 "기적이면서 마법같은 이 음악은 그 어떤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일어나 걸어갈 힘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현은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협주곡 2번을 들어보라며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재생버튼을 누르면 열다섯살 소녀가 느꼈던 충격적일 만큼 아름다운 서정성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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