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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화법 잊은 강경화 장관의 ‘입’

입력
2020.08.27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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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브리핑에서 취재진과 자주 부딪힌다. 현안에 대해 당국자들이 “확인된 바 없다”거나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같은 텅 빈 답변을 할 때 특히 그렇다. 그러나 '입 조심'을 하는 건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숙명이다. 단어 하나가 외교 분쟁으로, 문장 한 줄이 안보 손실로 번질 수 있어서다. ‘외교적 화법'은 고위 당국자일수록 필수 자질로 꼽힌다.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외교적 화법의 책무'를 잠시 잊은 듯 보였다. '한국 외교관의 뉴질랜드 대사관 직원 성추행 사건'에 대해 강 장관은 피해자나 뉴질랜드 정부에 사과할 뜻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깜짝 놀란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시 물었다. 강 장관은 단호했다. “외교부 장관으로서 다른 나라에 사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피해자가 한 이야기에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진실 규명이 먼저'라는 건 모든 사건에 해당하는 상식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외교를 총괄하는 장관이라면 '상식'도 때로는 '외교적으로' 언급해야 한다. "사과할 수 없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 강 장관의 발언은 외신을 타고 뉴질랜드에 곧바로 전해졌다. 피해자 측에선 "역겹다"는 반응이 나왔다.

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선 “죄송하다”고 했다. 지난달 문 대통령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전화통화에서 성추행 사건이 불쑥 거론되게 한 것에 대한 사죄였다.

한국인이 뉴질랜드 외교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있다고 치자. 뉴질랜드 외교부 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한국이나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우리 총리님께는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면, 우리는 용납할 수 있을까.

외교부는 가해자인 현직 외교관에게 2018년 이미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성추행 혐의를 인정해 징계를 하고도 외교부가 피해자의 '신빙성'을 따지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강 장관이 '신빙성'을 입에 올린 것은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2차 가해'를 떠올리게 한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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