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실종된 '정치의 과잉 사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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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실종된 '정치의 과잉 사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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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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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천
오연천울산대 총장

정치권 스스로 문제해결 전통확립 필요
사법적 대응은 최후의 보완적 통로일 뿐
숙고ㆍ협력의 절제된 정치문화 긴요


국회 의사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걸핏하면 상대 정당에 대한 고소ㆍ고발장을 검ㆍ경 청사에 접수하는 광경에 익숙해져 있다. 국정 현안과 관련하여 양보하고 타협하여 결론을 내는 임무를 부여받은 국민대표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검찰ㆍ법원 등 사법기관의 판단으로 이월시키는 행동 패턴은 분명 대의기구의 본질을 일탈하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과 법령에 기반하여 정치권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해 공적 결정으로 처리하여야 할 사안들을 사법기관의 몫으로 돌리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빈번하게 이루어질 경우 국민대표기구 고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되고 이는 원활한 국정운영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정치의 과잉 사법화' 현상으로 세계여론의 주목을 받아 온 베네수엘라, 벨로루시 같은 나라들이 국가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검사가 검사를 고발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연출되는 것을 보면서 법질서 유지의 책무를 지닌 공직자의 자기모순적 사법대응 행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상궤도를 일탈한 기자의 과잉취재 행태를 '검언(檢言)유착'이라는 비약된 프레임으로 에스컬레이션 시키는 일부 논자들 역시 부자연스러운 사법적 대응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련의 과잉 사법화 행태의 뿌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특정 가치만이 옳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자신의 방식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집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그 이면에 암묵적 정치적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면 사법적 대응의 파장은 상호불신과 정치적 갈등의 심화를 초래해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국론분열의 양상마저 노정될 수 있다.

사실상 사법적 다툼은 법적 절차가 종결되었다고 해서 그 사안이 깔끔히 완결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립되는 입장이나 갈등이 원만히 치유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불일치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의 사법적 문제제기가 보편적 대응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고 최후의 보완적 통로일 뿐이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깊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도 마지막까지 사안의 본질과 방향을 숙고ㆍ숙의하고 상대방과 조율ㆍ양보ㆍ타협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무한절제'의 자세가 존경받는 국민대표자로서의 정치적 책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선택과 결정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이익과 목표가 교차하는 복합적 양상을 띠고 있어 늘 상대적 관점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과 공직사회에서 단일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사법적 절차를 활용하여 자신의 목표를 관철하려는 모노레일적 시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도록 만드는 성숙한 정치문화와 주권자의 엄정한 심판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러한 협력ㆍ포용의 정치문화와 국민 의식함양이야말로 이미 IT분야와 방역체계에서 일류국가로 주목받고 있는 우리나라가 공동체의 가치 증진을 위한 정치 분야의 경쟁력에 있어서도 초일류가 될 수 있게 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 12월 미국대통령 선거에서 마지막 승부를 가름하는 플로리다주 재검표 작업을 중단토록 한 미국 대법원의 결정을 흔쾌히 수용하여 지지자들의 사법적 다툼을 봉쇄한 고어 대통령 후보의 연설은 우리 정치권이 눈여겨보아야 하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재검표를 통해 역전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임에도 고어 후보는 "서로의 차이를 계속 논의하여 분열하는 것보다 화합이 더 필요한 과업임을 깨달아야 한다"며 부시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감동적 연설을 남겼다. 만일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과연 어떤 양상이 전개되었을까?


오연천 울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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