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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우 이어 폭염 “치울 게 산더미인데 5분만 일해도 땀 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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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폭우 이어 폭염 “치울 게 산더미인데 5분만 일해도 땀 범벅”

입력
2020.08.19 19:0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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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곡성 수해 현장 둘러보니

19일 오후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입구 도로 갓길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하태민 기자

19일 오후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양정마을 입구 도로 갓길에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하태민 기자


19일 오후 찾은 전남 구례 수해지역은 수마(水魔)가 할퀴고 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읍내를 지나 양정마을에 들어서자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고 길가 양 옆으로 설치된 비닐하우스는 폭격을 맞은 듯 찢겨나가 뼈대만 앙상하게 서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에서도 복구 작업에 분주했다. 마을 안쪽 길엔 쓰레기를 실은 대형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연신 오고 갔다.

지난 7일과 8일 사이 기록적인 폭우와 댐 방류, 제방 붕괴로 피해가 컸던 구례군은 읍내 40%가 물에 잠겼다. 전체 1만3,000가구 중 10%에 달하는 1,180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고 오일장 등 상가 392동이 침수됐다. 총 피해액은 1,807억원으로 추정된다. 농경지 502㏊와 하우스 546동이 피해를 봤고 한우, 돼지, 오리 등 가축 1만5,846마리가 죽거나 유실됐다. 구조된 가축들도 지속적으로 폐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례오일장에서 농기계를 제작하는 업체 사장이 가게 내부가 2m 넘게 물이 차올랐다고 수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하태민 기자

구례오일장에서 농기계를 제작하는 업체 사장이 가게 내부가 2m 넘게 물이 차올랐다고 수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하태민 기자


연일 35도가 넘는 폭염으로 복구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주민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양정마을에서 만난 박모(72)씨는 "지난 폭우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며 "복구가 늦어져 언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복구 작업 관계자는 "5분만 서있어도 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며 "30분 작업을 하면 30분을 쉬어야한다"고 토로했다.

자원봉사자도 줄어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례군을 찾는 인원은 지난 15일 1,445명이었다. 하지만 수도권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18일 자원봉사자가 362명으로 줄었다. 구례군은 며칠 전부터 서울, 경기, 인천, 광주 지역에서 오는 봉사자는 지원을 제한하고 있다. 현재 군 장병 1,000명이 동원돼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군 장병들이 구례군 양정마을 비닐하우스 피해 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하태민 기자

군 장병들이 구례군 양정마을 비닐하우스 피해 현장에서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하태민 기자


구례지역은 침수된 주택 1,180가구 중 1,032가구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청소를 끝냈지만 나머지 120가구는 아직 쓰레기도 치우지 못한 상태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은 관내 9곳의 임시수용시설에서 생활 중이다. 오일장은 상가 392동 중 청소가 완료된 곳이 22곳에 지나지 않는다. 오일장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임모(61)씨는 "일손을 구해 연일 가게를 정리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영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걱정이다"고 울상을 지었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550㎜의 폭우가 쏟아진 곡성군도 예상보다 심각했다. 지난 12일까지 피해액은 600억원에서 18일 1,124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이재민은 1,353명에 이른다. 군 공무원들은 여름휴가를 모두 취소하고 수해복구에 동원됐다. 최대한 행정력을 집중해 복구에 나섰지만 지자체 예산의 한계와 집행에 소요되는 시간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부족한 구호품 지원과 침수된 주택을 수선해줄 재능기부 등 자원봉사가 절실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LG전자 임직원 봉사단과 경동나비엔이 구례오일장 인근에 수해 긴급복구서비스 천막을 설치하고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하태민 기자

LG전자 임직원 봉사단과 경동나비엔이 구례오일장 인근에 수해 긴급복구서비스 천막을 설치하고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하태민 기자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은 구례ㆍ곡성 주민들은 이번 사태가 물관리 부처의 잘못된 정책 탓이라며 격앙돼 있었다. 구례 오일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0)씨는 "서시천 둑이 터졌는데도 그때까지 제대로 된 재난상황을 받지 못했다"며 "폭우가 쏟아지고 위험한 상황이 에견됐는데도 섬진강댐 수위 조절을 제대로 못했고 방류 사실을 제때 알리지 않았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주민들은 지난 16일 구례 오일장 수해 현장을 찾은 조명래 환경부장관과 박재현 수자원공사 사장를 향해 섬진강 범람은 인재(人災)라며 강력 항의했다. 이날 진행된 피해 상인ㆍ군민 간담회에서 성난 주민들은 회의를 시작한지 10분도 안 돼 조 장관이 앉아 있던 책상을 엎고 의자를 발로 차며 분노를 표출했다.

섬진강 하류지역인 전북 남원시ㆍ임실군ㆍ순창군, 전남 곡성군ㆍ구례군ㆍ광양시, 경남 하동군 의회 등 7개 시군 의회 의장단은 18일 성명을 내고 "이번 집중 호우 피해는 섬진강댐 수문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가 초당 1,800톤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해 일어난 것"이라며 "환경부와 수공이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를 보상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지역은 집중호우와 댐 방류로 8명이 숨지고 2,600여 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구례·곡성= 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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