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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농인 아들 위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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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농인 아들 위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

입력
2020.08.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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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가봤다]농인위한 생애 첫 목소리 만드는 현장
가족의 목소리·구강 구조 토대로 AI가 소리 추론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중앙지사에서 김예슬·임수빈 인턴기자가 '마음 톡' 애플리케이션을 시연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중앙지사에서 김예슬·임수빈 인턴기자가 '마음 톡' 애플리케이션을 시연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제가 세상을 뜨면 혈육이라곤 단둘만 남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광주에 사는 50대 A씨는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습니다. 남은 삶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며, 그는 20대 중반과 후반의 두 아들을 떠올렸습니다.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들이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다지만 A씨는 그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바로 '목소리'인데요. 형제끼리는 수어로만 소통하다 보니 건청인(청각장애가 없는 사람)인 아버지가 진심을 담아 표현하더라도 두 아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아들들 사이에서 겉도는 느낌도 받았다고 하고요.

주어진 문장을 읽고 인공지능(AI)이 목소리를 학습하는 건 이미 상용화 한 기술인데요. 반면 농인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없는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건 국내 최초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토대로 구강구조, 나이 등을 고려해 AI가 학습과 추론을 통해 좀 더 현실과 가까운 아들의 목소리가 탄생한 거죠. 마치 장기 기증처럼요.

이들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농아인에게 목소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는 청력이나 목소리를 잃은 이들에게 AI 기술로 목소리를 선물합니다. KT의 '마음 톡'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는 건데요.

지난달 서울 강남에서 앱 오픈 행사가 열렸지만 A씨 삼부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장에 가는 것 대신 화상회의 플랫폼으로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는 마음 톡 앱을 이용해 "너희 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이 힘든 세상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한다'...마음 톡이란?

KT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시된 폐쇄형 애플리케이션 마음 톡은 AI 기술을 통해 농인의 목소리를 만들어 가족 등과 소통하도록 돕는다. 정준희 인턴기자

KT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시된 폐쇄형 애플리케이션 마음 톡은 AI 기술을 통해 농인의 목소리를 만들어 가족 등과 소통하도록 돕는다. 정준희 인턴기자

A씨는 아들에게 목소리를 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새벽부터 광주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울 강남구의 녹음실을 찾아왔습니다. 가족의 목소리가 있어야 AI가 이를 학습해 농아인의 목소리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씨는 7, 8시간에 걸쳐 1,000개 넘는 문장을 녹음했습니다.

녹음이 끝나고 자신을 데리러 올 두 아들이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A씨는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어디쯤 왔냐"며 전화해 물어봐 주겠다는 KT 직원의 말에는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고 합니다. 농아인 아들에게 전화를 하려면 음성이 아닌 영상통화를 걸어야 할 텐데요. 운전 중인 아들이 휴대폰 화면을 보다가 앞을 보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A씨는 눈이 어두워 문자를 불편해하고요.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아버지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제 마음 톡을 이용하면 아버지의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 톡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농아인과 가족들만 사용할 수 있는 '폐쇄형' 채팅 및 통화 앱입니다. 농아인은 문자를 하고 가족은 음성 통화를 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와 다르게 링크가 있는 이용자만 사용할 수 있다는데요.

그래서 직접 4일 KT 광화문 본사로 찾아가 직접 시연해 봤습니다.


소리를 문자로 바꿔 소통의 창구되다

KT는 지난달 25일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 참가자와 가족들을 초대해 마음 톡 앱 사용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젝트 참가자 김혜원 씨가 마음 톡을 이용해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KT는 지난달 25일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 참가자와 가족들을 초대해 마음 톡 앱 사용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젝트 참가자 김혜원 씨가 마음 톡을 이용해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앱을 실행하면 민트색 배경화면 위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마음 톡' 글귀가 뜹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 같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상단에 있는 '연락처 추가' 버튼을 누르면 농아인의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다음 초대 버튼을 누르면 추가된 연락처로 설치 링크가 담긴 문자가 자동으로 전송됩니다.

앱에는 농아인과 가족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부가 기능을 넣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고 하는데요. 건청인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게 농아인이 글자를 입력하면 목소리로 변환되고, 건청인이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말하면 농아인에게는 텍스트로 바뀌어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밖에도 자주 쓰는 문장을 대화 저장함에 저장해 누르기만 하면 재생되는 기능도 있습니다. 덕분에 건청인과 자주 소통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데요. 신청자 중에는 그래서 바리스타나 제빵사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농아인들은 수어를 쓰기 때문에 영상 통화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요. 더 나아가 마음 톡 앱을 이용하면, 상대방이 말하는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한 말풍선이 나옵니다. 스크롤을 내리면 대화가 전체 화면에 뜨고요. 즉 수어만 쓰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텍스트도 보낼 수 있고, 사진까지도 전송할 수 있는 채팅창이 같이 나오니 편리합니다.


농아인이 왜 목소리가 필요한지 설득이 쉽지 않아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정환 KT 지속가능경영전략팀장은 예상과 달리 신청자가 많지 않아 직접 농아인 복지기관을 찾아가 알렸다. 정준희 인턴기자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정환 KT 지속가능경영전략팀장은 예상과 달리 신청자가 많지 않아 직접 농아인 복지기관을 찾아가 알렸다. 정준희 인턴기자

간단하고 편리한 덕분에 이와 같은 서비스가 필요했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을 법한데요. 프로젝트 총책임자 이정환 KT 지속가능경영전략팀장은 하지만 실제 결과는 좀 달랐다고 합니다. 알아서 많은 농아인들이 지원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초반에는 많지 않았다고 해요.

이 팀장은 "처음에는 농아인이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적 측면을 부각했다"며 "그러다 보니 그 기술이 내 삶의 영역에 들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래서 참여자 모집에 나섰지만 이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3월 초에 신청을 받았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늦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수어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데 굳이 목소리를 찾아줘야 하냐"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팀장과 팀원들은 조바심을 느끼며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했나요. 농아인 학교, 농아인 복지관, 농아인 교회를 직접 찾아가 프로젝트의 담긴 뜻을 여러 차례 설명했습니다. 단 한 번에 모든 일이 풀리진 않았습니다. 계속 방문해서 진정성 있는 설득 끝에 오프라인에서도 참여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KT는 20명의 농아인에게 목소리를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이 팀장은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마음을 울렸지만 사연만 보고 선정할 수 없었다"며 "농아인 학교장이나 복지관장 등 농아인의 삶을 잘 아는 사람들이 직접 선택하게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설 첫 문장, 기사 한 줄' 수 없이 되뇌인 가족의 사랑

박정석 KT 융합기술원 팀장이 AI 음성합성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박정석 KT 융합기술원 팀장이 AI 음성합성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목소리는 어떻게 구현되는 걸까?' 모든 글자와 음소를 녹음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에서 AI가 구원투수로 등장했습니다. AI가 해당 문장에서 어떤 소리가 날지를 추론하도록 하는 건데요. 하지만 학습을 위해선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1,000개 가량의 문장을 녹음해야 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도 있고, 기사에서 발췌한 문장도 있습니다. 이후 성별, 나이, 구강구조 등을 AI 엔진으로 분석해 목소리를 구현합니다.

프로젝트에 참여 한 농아인 20명의 가족 중 1명씩 목소리를 녹음했습니다. 전체 녹음 기간만 따져도 한 달이 넘습니다. 녹음 시간도 보통 6, 7시간이 넘었을 만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고 해요. 가족들은 코인노래방 부스 같은 좁은 공간에 들어가 한나절을 버텨야 한 겁니다. 녹음실은 본인 목소리 외에 작은 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니 냉방기도 가동하지 않았습니다.

후텁지근하고 답답했을 텐데도 가족들은 꿋꿋이 견뎌냈다고 합니다.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버틴 겁니다. 녹음 및 기술 개발을 진행한 박정석 KT 융합기술원 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건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최초의 청각장애인 네일아트 심사위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김혜원(27)씨는 앱 오픈 행사에서 부모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자신에게 목소리를 준 여동생에게도 물론이고요.

김씨는 마음 톡 앱을 통해 "우리 웃으면서 행복하자"고 했습니다. 딸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농아인의 가족으로 살아온 지난날과, '목소리를 찾아주고 싶다'는 희망만 가지고 신청서를 쓰고 녹음을 하던 그 날을 떠올렸겠죠.


다음 목표는 후천성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

KT의 개인화 음성합성 기술과 AI 딥러닝 기술을 통한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는 앞으로 더 많은 농아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벵크

KT의 개인화 음성합성 기술과 AI 딥러닝 기술을 통한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는 앞으로 더 많은 농아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벵크

아직 갈 길은 멉니다. 박 팀장은 "녹음해야 하는 첫 문장 개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성우도 아닌 일반인인 건청인에게 오랜 시간 녹음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구현된 목소리에 감정을 싣는 기술도 고심해야 할 겁니다. 가족의 목소리를 빌려 구강구조에 맞게 목소리를 만들어도 어조는 일정할 수밖에 없겠죠.

기쁠 때 나오는 격양된 말투나 화났을 때의 감정도 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AI 목소리에 감정까지 넣어 목소리 톤을 바꿀 수 있는 기술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말을 배우는 시기에 사고나 질병으로 청력을 잃은 후천성 청각장애의 경우 현재의 기술로는 목소리를 만드는 게 훨씬 어렵다고 합니다. AI가 학습할 만한 데이터는 부족한데 청력을 잃기 전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똑같이 만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 팀장은 "지금은 선천성 청각장애 중심이었지만 후천성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가능하도록 완벽한 기술을 갖게 되면 더 많은 혜택을 드릴 수 있지 않겠냐"고 기대했습니다.


AI,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AI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지만,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AI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지만,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AI와 함께 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영화 '아이, 로봇'에 나온 것처럼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인간을 죽이고 혁명을 일으키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고, 되레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걱정하는 시선도 있죠.

하지만 농인을 위한 목소리 제작처럼 AI 덕분에 의사소통의 방법이 넓어질 가능성은 큽니다. 박 팀장은 "AI는 삶에서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을 대신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콜센터 같은 감정노동은 일을 감정 기복 없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프로젝트를 진행한 개발자와 책임자들이 입 모아 말했던 것처럼요.

"그레이엄 벨이 청각장애인 어머니에게 어떻게 소리를 전달할까 고민하다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해요. 150년이 지난 지금은 목소리를 발명했으니 AI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거죠."

김예슬·임수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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