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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이 나온다 한들

입력
2020.08.15 09: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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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 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 내각회의를 통해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공식 등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 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 내각회의를 통해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공식 등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아이가 소속돼 있는 동네 농구팀 엄마들과 모처럼 저녁식사를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종종 만나 아이들 이야기도 나누고 이런저런 고민도 공유하며 지내왔을 텐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반년이 넘도록 얼굴들을 보지 못했다. 끝 모르게 이어지는 코로나19와 장마로 마스크에 우산까지 챙겨 나가야 했지만, 그렇게라도 교류할 수 있는 게 다행이지 싶었다.

곧 개학을 앞둔 엄마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2학기엔 일주일에 등교를 며칠이나 할 수 있을지였다.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마당에 정상 등교는 불안하다는 목소리와, 더 이상의 온라인 수업은 무리인 데다 학습 격차가 커질까 봐 걱정된다는 의견이 묘하게 엇갈렸다. 살짝 긴장감이 감돌 때쯤 한 엄마가 “연말엔 백신이 나온다더라”며 희망 섞인 웃음을 지었다.

며칠 뒤인 11일 정말 코로나19 백신이 나왔다. 러시아가 자국에서 만든 백신을 자체 등록하고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필리핀과 브라질 일부 주에선 행여 놓칠세라 러시아 백신을 받아들일 움직임을 보였다. 선두를 빼앗긴 중국과 미국은 자국 기업 백신의 임상시험과 허가 절차에 더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화했다며 섣부른 백신 상용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러시아가 백신에 뜬금 없이 우주선 이름(스푸트니크 Ⅴ)을 붙이면서 쏘아 올린 상용화 경쟁은 여간해서 수그러들지 않을 분위기다. 백신 선두그룹에 끼기 위해 일부 국가들이 효능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허가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러시아의 이번 ‘폭탄 선언’ 전에도 효능이 50%를 넘으면 코로나19 백신으로 허가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백신 효능이 50%면 이론적으로 상용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면역력이 형성되기를 기대하기엔 상당히 낮은 수치다.

백신의 효능은 임상시험 과정에서 백신을 맞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실제 얼마나 병에 걸리는지를 비교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임상시험 참가자 100명에게 백신을 맞히고 다른 100명에게는 맞히지 않았는데, 맞은 사람 중에선 3명이, 안 맞은 사람 중에선 10명이 병에 걸렸다고 치자. 그렇다면 보통 100명 중 10명이 병에 걸리는데, 백신을 맞으면 그 중 7명은 안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우 백신의 효능은 70%가 된다.

백신 접종은 인위적으로 집단면역을 형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백신으로 특정 병원체에 대한 면역력을 미리 키워놓은 사람이 많아지면 병원체 전파가 자연스럽게 차단되면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도 병에 걸릴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코로나19에 대한 집단면역이 형성되려면 백신의 효능이 적어도 75%는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역시 아직 충분하지 않은 데이터를 근거로 한 잠정적인 수치이긴 하지만, 효능이 높을수록 집단면역 형성 가능성이 높아질 건 분명하다.

러시아 백신은 효능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임상시험 데이터가 학계에 공식 보고되지 않았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만큼 보편적으로 접종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런데 만약 어느 국가가 임상시험에서 효능이 50%로 확인된 코로나19 백신을 허가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효능이 기대보다 낮은 데다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도 있어 집단면역 형성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 장담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 제품화한 적이 없는 신기술이 처음 적용된 백신이 나올 경우도 골치 아파질 수 있다. 장기적인 부작용이 없을 거라고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백신이라면 개발된다 한들 확보에 적극 나서기도, 보고만 있기도 애매해질 듯하다.

여론조사기업 갤럽이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2일까지 미국 성인 7,632명에게 코로나19 백신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무료로 제공된다면 접종하겠느냐고 물었다. 접종 의지는 지지 정당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민주당 지지자 중 백신을 맞겠다고 답한 비율이 81%인 데 비해 공화당 지지자는 47%에 그쳤다. 코로나19 백신이 정치 이슈로 변질됐음을 보여준 설문조사다.

과학자들은 효능과 안전성이 ‘애매한’ 코로나19 백신이 과열된 확보 경쟁이나 정치적 배경, 잘못된 여론 등에 떠밀려 국내에 들어오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어떤 유력한 지도자나 정치인의 호언장담도 데이터를 대신할 수 없다. 보건당국이 코로나19 백신을 선택하기 위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국민에게 공유해야 할 시점이다.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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