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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과 남중국해 거래?'... 두테르테 발언, 변심인가 와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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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과 남중국해 거래?'... 두테르테 발언, 변심인가 와전인가

입력
2020.08.04 16: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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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백신과 남중국해 연결은 무리,
미중 간 등거리ㆍ균형외교 일관된 기조"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민들이 남중국해 관련 반중 시위를 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민들이 남중국해 관련 반중 시위를 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최근 국정연설이 도마에 올랐다. "중국에 백신 요청" "남중국해 외교적 해결" 발언이 뒤섞이면서 악화일로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해결을 위해 남중국해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하지만 두 발언을 바로 연결짓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많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달 27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나왔다. 필리핀 관보에 올라온 연설 전문을 4일 살펴본 결과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간쯤 자국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한 뒤 "나흘 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필리핀이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얻거나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전화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경제ㆍ정치ㆍ환경분야 등을 장황하게 설명한 한참 뒤 남중국해를 언급했다. "남중국해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외교의 지평을 넓혔다. 우리가 전쟁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외교적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처리하는 게 낫다고 제안한다. 중국이 그것(서필리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우리도 주장한다. 중국은 무기가 있고 우리는 없다. 우리가 전쟁으로 가야 하나. 나는 할 수 없다는 걸 기꺼이 인정한다." 한마디로 외교적 해결을 바라는 내용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라플러 캡처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라플러 캡처


맥락이 다른 두 발언이 연결되면서 '코로나19로 다급해진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에 백신을 요청하면서 남중국해 입장도 바뀐 것 아니냐'는 풀이가 힘을 얻었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변심'으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중국 외교부도 "필리핀의 (백신) 요청을 우선 고려하겠다"고 호응했다.

필리핀은 1994년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일부를 중국에게 뺏겼고, 2012년엔 스카버러암초(중국명 황옌다오)가 분쟁 대상으로 떠올랐다. 양국이 군사 대치 직전까지 갔으나 미국이 발을 빼면서 필리핀은 국제 분쟁 재판을 택했고, 2016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올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이 6월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에서 이례적으로 남중국해를 거론하며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강조한 건 필리핀의 승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아세안 10개국 중 남중국해에 특히 예민한 국가는 직접 이해당사국인 베트남과 필리핀이다. 필리핀이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베트남과 다른 길을 간다면 아세안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가뜩이나 미얀마와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반도 내륙국은 투자를 앞세운 중국 쪽에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는 실정이다. 더구나 필리핀이 돌아선다면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편가르기에 나선 미국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다.


남중국해 연안국 영해 분쟁 현황

남중국해 연안국 영해 분쟁 현황


전문가들은 그러나 미중 등거리ㆍ균형외교라는 일관된 정책기조에서 나온 그의 발언에서 맥락이 다른 백신과 남중국해 부분을 바로 연결하는 건 과잉해석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필리핀은 올 초 미국과의 방문군협정(VFA) 파기를 통보했다가 6월에 이를 보류하는 등 친중 대통령과 친미 관료들이 사안마다 줄타기 외교를 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두테르테 대통령을 '패배주의자' '친중주의자'라 비판하는 필리핀 매체도 두 발언을 연결짓지 않았고, 다른 아세안 매체 대부분도 '백신 요청'만 따로 보도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상황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줄타기 외교로 실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국의 대통령이 영토 문제를 포기한다는 논조는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민들이 반중 시위를 하고 있다. 마닐라=EPA연합뉴스

필리핀 마닐라에서 시민들이 반중 시위를 하고 있다. 마닐라=EPA연합뉴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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