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하종현, 이들은 1960년대 한국의 '뜨거운 추상'을 상징하는 이들이다. 이성,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 속의 격정을 화폭에 풀어놓은 작가들이다. 그렇다면 '차가운 추상'을 보여준 한국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 사람이 손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터치와 숨결까지 모두 제거해버린, 물질세계의 냉정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한국의 작가 말이다.
쉽사리 떠올리기 어렵다. 한국에선 화가의 천재성, 예술의 낭만성 같은 멋드러진 말을 제거한 냉정하고 차가운 물질세계란 그리 환영받을 만한 주제가 아니다.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 정도만 예외적일 뿐이다.
10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은 그 대답으로 이승조(1941~1990)을 내놓는 전시다. 마침 올해는 그의 30주기다.
이승조는 기하추상의 시초로 꼽힌다. 계기는 4ㆍ19혁명이다. 1960년 홍대 서양화과에 입학한지 한달만에 터진 사건이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휘몰아치던 그 시기 이승조는 '추상화는 논리적일 수 없을까'라는 화두를 붙잡았다.
1968년 내놓은 작품 ‘핵10’이 시작이었다. 뜨거운 추상이 휩쓸던 1960년대, 이승조는 '오리진'을 만들어 주관을 배제한 순수 회화, 본질과 근원의 조형을 파고들었다. 도달한 곳은 물질세계의 최소 단위 '핵'이었다. '핵' 연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화면 사이 원색의 색깔띠와 기둥을 배치한 파이프 형태의 그림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계속적인 실험을 이어가면서 말년에는 검은 톤의 그림들을 잇달아 발표, 단색화에 도달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이승조에게 핵이라는 주제, 파이프라는 형태는 현대문명, 현대세계의 떠받치는 물질 그 자체의 본질이었던 셈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현재 단색화의 국제화가 있기까지 초석을 놓고, 한국 기하추상의 태동을 주도한 이승조의 미술사적 위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현은 이승조 작가의 작품들을 현대음악으로 재해석한 공연도 추진 중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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